전 정권 임명 공공기관장 줄사퇴’

문재인 정부의 장관 임명 등 인선이 마무리 되면서 인사의 초점이 공공기관들로 향하며 본격적인 새 정부의 인적 쇄신이 시작되고 있다.

최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의 ‘공공기관 적폐 기관장 10인’의 명단 발표에 이어 이미 박근혜 정부가 임명했던 공공기관 기관장들이 줄줄이 사퇴하면서 새 정부의 공공기관장 물갈이가 본격화 되고 있다.

물론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처럼 새 정부 들어서 몇몇 공공기관장들의 자진 사퇴가 어느 정도 예견돼 있었지만 임기를 한참 남겨 놓은 일부 기관장들이 최근 각종 비리혐의로 중도 하차를 결정해 향후 공공기관장 교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가스公 이승훈 사장

경영부실 책임 노조 압박에 자진사퇴

우선 경제학자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 시절 임명된 한국가스공사 이승훈 사장은 임기(2018년 6월 30일) 1년여를 남기고 지난 7월 20일 정부에 사표를 제출했다. 이로써 이승훈 사장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공기관의 사장 가운데 처음으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2015년 7월 취임한 이 사장은 최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으로부터 ‘공공기관 적폐 기관장 10인’ 중 한 명으로 꼽히며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 또한 가스공사가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3년 연속 낙제점인 ‘D’를 받은 데다 박근혜 정부 시절 노조의 동의 없이 성과연봉제를 강행했다는 이유로 반발을 사 자진사퇴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스공사는 당분간은 안완기 대행(현 부사장) 체제로 운영될 예정이며 조만간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신규 사장을 선임할 계획이다.

이승훈 사장의 퇴임 이후 가스공사 노조 측은 “새 정부의 국정과제 뿐 아니라 가스공사 대내외적으로 해결해야 할 중대한 사안들이 많은 시기인 만큼 공공기관장의 공백이 장기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금 가스공사는 국민과 조직구성원의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진심으로 고민하며 공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사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일방적 권력형 낙하산이 아닌 노동의 가치와 공공성을 존중하는 적임자를 검증하고 선임하기 위한 민주적인 절차를 조속히 진행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뿐만 아니라 “현재 공사에는 조직 내 산재된 갈등의 해소, 가스산업의 공공성 강화정책 수립, 안전보건 강화, 비리와 부패 척결 등 공사의 미래를 위해 노사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며 “무엇보다 성과연봉제 추진과정 중 발생한 노조탄압을 중단하고 조합원에 대한 부당징계를 철회하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스안전公 박기동 사장

채용비리 혐의 검찰수사 직후 사퇴 결정

이와 함께 적폐 기관장 리스트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최근 검찰 수사가 진행중이던 한국가스안전공사의 박기동 사장도 임기(올해 12월) 5개월을 남겨 놓고 돌연 지난 7월 24일 정부에 사표를 제출했다.

가스안전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채용비리로 감사원에서 검찰에 수사 의뢰된 후 청주지방검찰청 충주지청에서 본격적인 관계 직원 소환이 시작되자 박기동 사장이 정부에 전격적으로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20일 박 사장의 집무실과 사택, 자택 등을 압수수색해 업무 관련 문서, 장부·일지 등을 확보한 바 있다. 검찰이 압수수색에 나선 것은 채용 관련 비리 건과 관련 된 것으로 감사원이 최근 박 사장이 직원 채용 때 최종 면접자 순위를 조작했다는 이유로 검찰에 수사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압수수색 대상도 최종 인사권자인 박기동 사장과 인사부서에 한해 진행됐다.

검찰은 최종 면접에서 합격순위가 변경된 것은 박기동 사장이 부당하게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사실여부 파악에 지중하고 있다.

실제로 가스안전공사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신입직원 채용과정에서의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당시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이찬열 의원이 산업부에서 받은 ‘공공기관 인사채용 감사결과보고서’에 따르면 가스안전공사는 예비합격자 순위를 조작해 최종합격자를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에 따르면 실제 가스안전공사는 채용 과정에서 특정학교 출신을 전체 예비후보자 중 유일하다는 이유로 우선순위에, 남성 직원에 적합한 업무라는 이유로 여성을 후순위에 배정했다. 이로 인해 2015년 5급 신입 최종합격자 중 화공(1명), 기계(3명), 전기·전자(1명) 분야 5명은 당초 예비후보자 순위에서는 추가 합격 대상자가 될 수 없는데도 최종 합격자로 뽑혔다.

당시 감사로 2명의 직원이 경고 처분됐으며, 기관장(사장)경고, 기관경고, 개선요구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에 지적된 채용문제는 2015년 상반기에 발생한 것으로 2016년 3월 산업통상자원부의 감사를 통해 적발된 사항이다. 가스안전공사는 산업부 감사 이후 채용관련 기준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채용관련 기준을 개정한 뒤에도 부적정한 방법으로 직원을 채용했느냐가 중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감사원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검찰이 대대적 압수수색을 펼친 만큼 2015년 상반기에 발생한 부적정 채용문제 외에 추가적인 사항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박 사장은 채용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수사가 진행되자 국민 생활안전을 책임지는 공사의 신뢰 추락과 직원들의 동요가 시작돼 지난 18일 책임을 통감하고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감사원과 산업통상자원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스안전공사 측에 따르면 박기동 사장은 “채용관련으로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국민과 정부에 사죄하며 인사권자인 사장이 책임지고 물러나는 점을 고려해 조직이 하루빨리 안정을 되찾고 흔들림 없이 국가 가스안전관리에 매진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심경을 전했다.

석유公 김정래 사장

공기업 사장 줄사퇴로 ‘가시방석’

이처럼 에너지공기업 수장들이 줄줄이 사퇴하면서 최근 내부적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한국석유공사 김정래 사장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는 김정래 사장 역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지목한 사퇴해야 할 ‘공공기관 적폐 기관장 10인’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앞서 가스공사 이승훈 사장이 사퇴하면서 노동계에서 적폐청산 대상으로 지목한 기관장은 김 사장이 유일하다.

현대중공업 사장을 역임하고 지난 2016년 2월 석유공사 수장직에 오른 김정래 사장은 그동안 성과연봉제 강제도입과 노조 파괴행위를 일삼고 있다며 공사 노조의 강한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임기 중 학교 동문과 현대그룹 출신 등 측근 4명을 특혜채용 했다는 의혹과 함께 밀실경영 및 울산사옥 매각시 투기자본 특혜, 외유성 출장시 7성급 호텔 숙박(1년간 해외출장비만 약 1,500만원 지출) 등 모럴해저드 및 적폐의 집합체로 지목돼 왔다.

석유공사 노조는 최근 사옥매각과 관련 김정래 사장을 대상으로 배임혐의로 고소키로 한데 이어 배임죄가 성립되는지에 대한 법률검토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 측은 사옥매각 관련 당장 부채비율을 11% 가량 낮출 수 있지만 오는 2019년 임차료가 부채로 인식되면 부채비율이 8% 늘어나 실제로 현재 기준 3% 밖에 부채비율을 낮추는 것에 지나지 않고 5년 후 사옥을 다시 매입한다 하더라도 임차료만 426억원(연간 85억원 기준) 가량이 발생해 공사의 현금흐름에 악영향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조 측은 이미 발행된 사채를 상환하기 위해 사옥을 매각하는 것보다 새로운 사채를 발행하는 차환을 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언급하면서 이자비용 감축을 위한 고리채무변제 측면에서 임대수익률이 당장 5년간 4%임을 감안하고 공사가 최고금리인 4% 사채를 상환하는데 이 재원을 활용한다면 단순계산으로 공사는 0.3%의 손실을 보는 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음 사퇴는 ‘나야 나?’

임기 남은 기관장들 ‘전전긍긍’

산업부 산하 에너지공기업 기관장 사퇴 분위기와 함께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다른 부처 산하 공공공기관장들의 줄사퇴 여부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유세지원단장을 맡았던 한국도로공사 김학송 사장과 국민연금기금 강면욱 운용본부장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강 본부장은 지난해 2월 임명될 때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과 고등학교·대학 선후배 사이여서 ‘낙하산 논란’이 됐던 바 있다.

특히 앞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공공대개혁을 위한 적폐기관장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발표한 ‘공공기관 적폐 기관장 10인’의 추후 교체 여부도 관심의 대상이다. 이미 가스공사 이승훈 사장과 한국철도공사(코레일) 홍순만 사장이 사퇴한 상황에서 남은 한국석유공사 김정래 사장, 한국동서발전 박희성 사장직무대행, 한국노동연구원 방하남 원장,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정영훈 이사장, 대한법률구조공단 이헌 이사장, 서울대학병원 서창석 원장,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김옥이 이사장 등의 사퇴도 대대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명단에는 없지만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타 공공기관장들 또한 현 정부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일시중단을 결정한 후에도 ‘영구중단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공언한 한국수력원자력 이관섭 사장이나, 지난 6월 변전소 고장으로 수도권에 대규모 정전사태를 초래했던 한국전력 조환익 사장의 입지도 좁아졌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돼 있음에도 정권이 바뀌면 공공기관장들의 사표를 받는 관례는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지만 새 정권과의 원활한 협력을 고려하면 자진사퇴가 자연스러운 분위가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정권에 따라 공공기관장이 자진 사퇴하는 관례, 새로운 정권과 공공기관장 간의 원활한 협력을 위해선 기관장 교체 필요성이 있다”면서도 “왜 자진 사퇴를 해야 하는지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사퇴를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