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이어져온 철강산업의 구조조정이 최근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국내 산업용가스 업계에도 상당한 파장이 예고되고 있다.
이같은 전망은 전세계 모든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또한 철강산업이 최대의 산업용가스 제조원이자 잉여가스의 원천(源泉)이기 때문에 철강업계의 움직임은 반드시 도미노현상을 일으켜 산업용가스 업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막연한 논리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
한국철강의 환영철강공업 인수와 AK캐피탈 컨소시엄의 한보철강 인수라는 2건의 메이저급 매각작업이 구체화됨에 따라 양사의 가동정상화 및 설비증설 등에 의해 잉여물량의 증가조짐이 관련업계를 중심으로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추가생산될지도 모르는 잉여물량을 획득하기 위한 산업용가스 충전소들의 물밑 줄서기 작업도 벌써부터 조금씩 눈에 띄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따라 환영철강과 한보철강의 인수 및 가동정상화 관련 현황과 전망, 국내 산업용가스 잉여시장에 미칠 파장 등에 대해 자세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철강산업 개편과 산업용가스
IMF사태로 인한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포스코, INI스틸, 동국제강 등 대다수 국내 철강업체들은 경쟁력강화와 비용절감, 생산효율향상을 위한 설비합리화에 적극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국내 철강.제강업계가 역대 최고수준의 생산.판매실적을 올리고 있는 것 또한 건설 및 조선산업의 호황과 함께 이러한 설비합리화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산업용가스 업계의 입장에서 본다면 철강산업은 잉여가스 공급자로서의 의미가 90% 이상을 차지한다해도 과언이 아니므로 이들의 설비합리화는 별다른 이슈가 아니다. 다소간의 잉여물량 변동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년 진행되는 정기보수점검(overhaul)보다도 낮다는데 그 이유가 있다.
반면 철강업체들의 인수, 매각, 합병은 설비합리화와는 전혀 다른 거대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 인수나 합병이 존재하는 곳에는 반드시 ‘정상가동’과 ‘추가투자’ ‘설비매각’ 등과 같은 명제들이 뒤따르며 이는 곧 잉여가스의 증가 또는 감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산업용가스 업체들은 포스코 등과 같은 메이저 철강업체의 설비합리화보다 오히려 중소규모 철강업체의 매각 동향에 산업용가스업체들이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철강의 환영철강 인수, AK캐피탈의 한보철강 인수, 일본 야마토공업의 한보 부산제강소 인수 등 부실기업의 매각은 동업계에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특히 1,000㎥/hr(ASU), 1,500㎥/hr(PSA), 2,000㎥/hr(PSA) 등 상대적으로 소규모에 속하는 산소공장을 운영중인 한보 부산제강소보다는 아시아 최대규모인 시간당 40,000㎥의 ASU 3기(현재 미가동)를 보유한 한보철강이나 신규 액산플랜트 건설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 환영철강 등 2社가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철강업계 잉여물에 대한 산업용가스 업계의 이같은 주목은 액메이커 및 일부 잉여가스 유통업체들과 같이 매입후 판매를 목적으로하는 집단과 잉여가스 유통량 증가로 인한 시장문란을 우려하는 집단 등으로 양분되어 있다.
매각 추이 및 현황
지난 97년의 부도이후 추진되어온 한보철강의 매각작업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은 험로(險路)의 연속이었다. 수년간 여러 업체들과 매각협상을 벌여왔지만 매각대금 등 인수조건에 대한 이견이 발생, 결렬을 거듭해왔다.
이같은 한보철강의 매각은 지난해 11월 주채권자인 자산관리공사(KAMCO)의 공개입찰에서 AK캐피탈 컨소시엄이 ‘4억1백만달러±9.3%’의 조건으로 응찰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이후 수개월간의 매각조건협상 끝에 올해 3월 AK캐피탈이 최종낙찰자로 선정됐으며 같은달 26일에는 한보철강측과 매각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양측은 자산 및 부채에 대한 실사를 마치고 막마지 협상을 통해 구체적인 매매계약서를 작성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금명간 공식 본계약이 체결될 전망이다.
환영철강공업 또한 지난 96년말 최종 부도처리된 이후 지금의 새주인인 한국철강을 맞을때까지 6년여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먼저 환영철강은 96년 12월 법정관리를 신청한지 1개월만인 97년 1월에 당시 M&A로 사세확장에 나서고 있던 신호그룹에 인수됐다. 환영철강의 인수로 신호그룹은 국내 30대기업에 편입되는 등 외형상 비약적인 성장을 나타냈지만 신호그룹의 신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과도한 M&A와 IMF로 인한 경기악화로 심각한 자금경색이 초래되면서 그룹자체가 붕괴될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당시에도 법정관리 처지에 있었던 환영철강 또한 2001년 자본전액잠식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몰렸고 급기야 지난해말 M&A시장에 다시한번 매물로 나오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결국 체권단은 올해 2월 한국철강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으며 한달여만인 지난 3월 4백억원 규모의 신주 인수와 1백억원의 자금을 대여하는 방식으로 경영권을 인수하는 본계약을 체결했다. 현재 한국철강은 지방영업담당 김영진 상무를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파견, 기존 이상직 대표와 복수대표 체제를 이루면서 법정관리 탈피를 위한 감자.증자 등의 작업을 진행중에 있다.
마지막으로 97년 1월 모기업인 한보의 부도로 연쇄부도를 내고 98년 11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한보 부산제강소는 2001년 중순경 제3자인수를 통한 독자생존을 천명, 새주인 찾기에 나섰다. 그러나 부산제강소는 첫번째 우선협상대상자였던 평화제철과 양해각서까지 체결하고도 협상이 결렬됐고 제2차인수의향서 접수를 통해 1천4백20억원을 제시한 일본 야마토공업과 지난 8월6일 본계약을 체결함으로서 회생에 돌입했다.
추가 잉여물 발생가능성과 전망
○ 한보철강
한보철강의 매각과 관련한 관심의 초점은 창사이래 단한번도 가동된바 없었던 B지구 산소공장의 가동여부이다. 만일 시간당 40,000㎥나 되는 산소공장 3개소로 구성된 B지구가 본격 가동되면 국내 산업용가스(산소,질소,아르곤) 전체생산량의 약 20%를 점유하게 되는데 이에 상응하여 하루에만 탱크로리 24대에 달하는 막대한 량의 잉여가스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이와관련 최근 AK캐피탈이 한보철강에 ‘인수완료후 2개월이내에 열연공장을 가동시킬수 있는 방안에 대한 보고서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B지구 가동설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한보철강의 입장설명과 주변정황을 감안해보면 B지구 가동은 아직 미지수에 가깝다.
한보철강 산소공장의 한 책임자는 “이번 매각이 일괄매각방식으로 진행중에 있어 일정부분 생산량 증대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는 있으나 회사차원에서 논의되거나 결정된 사안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액메이커를 포함한 몇몇 업체가 단순한 관심을 표명했을뿐 산업용가스 업체들과의 공식접촉은 없었으며 접촉할 단계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열연공장 가동에 대해서도 “보고서 제출요구는 사실이지만 이에 필요한 물량은 A지구에서 충당할 계획으로 있어 B지구와는 관련이 없다”며 “내년 상반기경 A지구가 풀가동 될 것이라는 사실이 현재 예상할 수 있는 전부”라고 설명했다.
즉 현재 상황을 종합해보면 한보철강의 잉여물량 변동은 어느정도 예상되지만 열연공장 가동에 따른 A지구 산소플랜트 가동율 상승에 따른 것에 불과하며 자체 소비량도 함께 증가되기 때문에 잉여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보철강측도 지난 97년 A지구를 풀가동했을 당시 잉여물량인 산소 1천5백톤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나마 이 또한 AK캐피탈과의 본계약이 체결되고 모든 인수작업이 끝나는 11월에 이르러야 작업이 추진, 내년쯤에나 가시화될 전망이다.
물론 AK캐피탈이 한보철강의 정상화를 위해 어떠한 사업계획을 수립.추진하는가에 따라 B지구 가동도 완전히 배재할 수는 없다. 모든 사안이 미지수에 가까운 현 시점에서 액메이커 4社를 비롯한 주요 산업용가스 업체들이 한보철강의 일거수일투족에 눈을 띄지 않고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B지구 가동이 이루어진다해도 직접 운영할 가능성과 현대석유화학, 삼성석유화학, 하이닉스반도체 등과 같이 플랜트를 매각하고 온사이트 방식으로 공급받을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어 섣부른 판단은 시기상조이다. 결국 한보철강의 B지구 가동여부, 추가 잉여가스의 발생, 잉여물 처리방식 등의 쟁점사안은 2003년도 사업계획이 도출되는 연말경에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판단된다.
○ 환영철강공업
산업용가스 업계에 있어 한보철강의 B지구 가동이 관건이라면 환영철강의 경우에는 신규 액산공장 건설이 초미의 관심거리이다. 지난 3월 한국철강이 환영철강을 인수할 당시 가동정상화와 함께 시장상황이나 효율성, 경제성 등을 고려해 신규 자가플랜트를 건설할 수도 있다고 표명한바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나타난 양사의 움직임이나 현 철강업계의 기조를 감안하면 환영철강의 신규 자가플랜트 설치는 비교적 가능성이 높은 편이라 할 수 있다.
과거 환영철강은 액산탱크로리를 통해 공정에 필요한 산소를 공급받아 왔지만 효율성 증진을 위해 지난 2000년 9월경 프렉스에어코리아에서 시간당 1200㎥ 규모의 VPSA플랜트를 설치, 운용중에 있다.
그러나 이 VPSA는 현재의 철강생산공정을 커버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능력의 90～100%를 발휘하고 있어 한국철강이 환영철강의 정상화를 위해 철강 증산을 추진한다면 반드시 추가적인 산소플랜트가 설치가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환영철강 산소공장의 한 관계자는 “현재 분위기상 신규 액산플랜트 건설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며 “VPSA 설치시에도 모든 유틸리티를 생산량 증설 등을 감안하여 설계했기 때문에 산소공장 확충에 구조적인 물의는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더해 조선 및 건설 경기의 호황으로 국내 철강생산량이 사상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는 점도 이같은 시각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원가절감 등을 위해 액산공장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시기나 절차 등에 대해 가시화된 사항은 전혀 없다”며 “한국철강측 인사가 영입된후 새로운 사업계획.운영방안이 나와야만 정확한 내용이 결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시말해 환영철강의 설비투자나 증설 등의 문제는 이미 사업계획이 확정되어 있는 올해보다는 회생노력이 본격화될 2003년이후로 순연될 가능성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