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법의 시행으로 제조물에 대한 품질보증활동이 기존 생산자중심에서 소비자중심으로 전환됨으로서 제조물 결함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입을 경우 제조자가 과실유무에 관계없이 책임을 져야만 한다. 결국 국내 모든 제조업체들은 과거와 달리 자사가 생산한 제품에 대한 강력하고도 포괄적임 책임을 지게된 것이다.
산업용가스 업계 또한 이러한 PL법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러나 활발한 대응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여타업종과 달리 산업용가스 업계의 경우 PL법에 적극 대처하는 모습들은 아직까지도 찾아보기 어려우며 PL법에 대한 정확한 의미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에 따라 본지에서는 제조물책임법의 정확한 정의와 논란이 되고 있는 산업용가스업체의 적용대상 여부, 대응방안 등에 대해 심도 깊게 살펴보고자 한다.
제조물책임법이란
제조물 책임(PL)은 미국의 ‘결함 제조물에 관한 손해배상책임’에서 발전한 개념으로 ‘Product Liability’의 약자이다.
여기서 의미하는 제조물 책임이란 자동차, 식품, 의약품 등 각종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소비자 또는 제3자의 생명.신체.재산 등에 손해가 발생했을 경우 해당 제조물의 제조 및 공급업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PL법은 미국, 영국, 일본, 중국 등 세계 30여개국에서 시행되고 있는데 국내 PL법상에는 아파트 등 부동산, 미가공된 1차 임.축.수산물, 소프트웨어.정보 등 지적재산물을 제외한 모든 제조 또는 가공된 동산이 제조물책임의 범위에 포함되어 있다.
특히 제조물책임은 제조업자와 함께 제품을 가공 및 수입한 자도 해당되며 제품에 자신을 제조업자로 표시하거나 오인할 수 있는 표시를 한 ‘표시제조업자’ 그리고 피해자가 제품의 제조업자를 알 수 없는 경우 판매업자도 책임을 질 수 있다.
단 판매업자는 제조업자나 자신에게 제품을 공급한 업자를 피해자에게 알려주면 책임이 면제된다.
또한 제조물책임은 제조물 자체에 결함과 하자가 있을 때는 물론 제조업자가 합리적인 설명.지시.경고 등의 표시를 했다면 피해나 위험을 줄일 수 있었음에도 이를 하지 않은 ‘표시상의 결함’에 의해서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PL법의 법조문에는 소비자(피해자)가 ‘제품의 결함유무, 손해발생 여부, 손해가 결함 때문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하지만 세계적인 PL법 관련 판례에서는 ‘사실상의 추정원칙’을 적용, 소비자가 통상적인 방법으로 제품을 사용하던 중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만 입증하면 해당제품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과거에는 소비자가 제품의 결함을 입증해야만 피해(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제조업체가 소비자의 과실을 밝혀내거나 제품의 무결함을 입증해야만 책임을 면할 수 있도록 보호주체가 반전(反轉)된 것이다.
산업용가스업계의 PL법 준비상황
본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PL법 시행과 관련해 적극적인 대응책을 구축했거나 마련중에 있는 산업용가스 업체는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 중소기업들이 PL법에 대한 인식부재와 열악한 자금사정으로 적절한 준비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는 하지만 많은 수의 업체들이 향후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PL법에 대비해 다각적인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과는 너무나도 대비되는 실정이다.
일례로 외국제품을 수입 판매하는 종합상사들은 자사명의로 국내에서 팔리는 일부 수입품들로 인해 문제발생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 대책마련에 한창이며 석유화학 관련업체들도 제품의 위험성을 알리는 ‘표시상의 결함’이 발생하지 않도록 영업팀, 법무팀, 연구소 등이 최종제품 생산업자들에게 유해성분, 폭발성, 인화성, 인체유해성 등을 정확히 알리고 오용을 방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표시방법과 표시문구를 연구중에 있다.
반면 산업용가스 업계에서는 액메이커나 설비.장비제조업체 등과 같이 제조업체임이 확실한 곳에서도 특별한 움직임을 발견할 수 없었으며 자사가 제조업체에 속하는지 또는 PL법 대상에 포함되는지 애매한 산업용가스 충전소들은 PL법이 시행된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업체들도 있었다.
실제로 대성산소, 프렉스에어코리아, BOC가스코리아, 한국산업가스 등 액메이커들은 PL법 시행과는 상관없이 지금까지 해왔던 비지니스 방식을 고수하는 방향으로 PL법에 대처하고 있다.
한 액메이커 관계자는 “4대 액메이커는 대부분 해외다국적 기업의 자회사이기 때문에 이미 오래전부터 영업.배송.계약 등에 있어 PL법이 시행되고 있는 국가의 기준을 준용해 왔다”며 “국내 PL법의 도입으로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설비.장비제조 및 수입업체들은 더욱 상황이 심각하다. 가스사고는 대개 가스 본연의 결함(하자)보다는 설비.장비.배관 등이 직접적 원인이 되고 있지만 극소수 업체가 PL보험(제조물책임보험.생산물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하는 등 나름대로의 조치를 취하고 있을 뿐 대다수는 일단 추이를 지켜본다는 유보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설비업체 A사의 관계자는 “경영기반이 취약한 중소기업에게 고액의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되면 이는 즉시 도산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고있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현실적으로 PL법 시행에 대응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물론 산업용가스 업계의 이같은 현상은 거의 모든 중소기업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4월경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종업원 5명이상 3백명미만의 중소제조업체 2백71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PL법 시행과 관련 사내 전담조직을 구성한 업체는 조사대상의 0.7%에 불과하며 ‘교육받은 인원도 없고 전문인력도 양성되지 않은 상태'라는 응답이 무려 56.1%로 절반이상을 차지했다.
또한 약 31만7천개사에 이르는 중소제조업체중 약 85%정도가 PL법 시행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PL보험에 가입한 건수도 2백19건에 불과했다. 이와관련 PL보험이 기존의 배상책임보험과 비교해 최소한 50%이상 비싸다는 점도 중소기업들의 보험가입을 망설이게 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총 17건이 발생한 고압가스사고에서 6명의 사망자와 12명의 부상자를 기록했던 것처럼 산업용가스는 인사사고의 비율이 매우 높아 사고발생시 막대한 손배소송이 예상되기 때문에 여타 업종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산업용가스 업체들은 비용상의 한계도 있지만 대부분 PL법에 대해 ‘나와는 상관없다’라는 식으로 문제의식 자체를 갖고있지 않다는 점이 더 큰 문제로 부각된다.
이는 산업용가스 사고가 대개 저장탱크 및 저장용기의 누출이나 폭발에 따른 것이므로 액메이커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충전소와 판매업소의 경우 지난해 산업자원부측이 ‘충전소는 제조업으로 볼 수 없다’라는 해석을 내림으로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PL법과는 상관없다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충전.판매업소, 자가플랜트도 PL법 대상
그러나 산자부와 한국가스안전공사의 PL법 담당자들은 산업용가스 충전소 및 판매업소도 사안에 따라 PL법의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PL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밝히고 있다.
산자부 PL팀의 지건중 사무관은 “과거 산자부에서 충전소를 제조업체로 볼 수 없다는 견지의 입장을 밝힌 적은 있지만 이는 담당자의 판단일 뿐 법적효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며 “충전소는 물론 판매업체도 법원의 판단에 따라 PL법에 의해 손배소송을 제기 당할 가능성이 다분한 만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위에 언급된 바와 같이 ‘제품에 성명, 상호, 상표 등 기타표시를 하여 자신을 제조업자로 표시하거나 오인할 수 있는 표시를 한 자’ 그리고 ‘제조업체를 알 수 없는 경우 판매업자’가 제조물책임을 져야만 한다.
즉 법원이 인정한다면 사고의 정황에 따라 소비자는 액메이커 및 잉여가스를 공급하는 자가플랜트 운용업체, 충전소, 판매업소, 설비업체 모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으며 충전소는 액메이커와 자가플랜트 운용업체 및 설비업체 그리고 판매업소는 충전소와 설비업체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산업용가스 관련업체가 PL법에 의해 소송을 제기 당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부분은 단연 ‘표시상의 결함’이다. 제품이 100% 완벽하다 해도 소비자에게 제품에 대한 적절한 설명.경고.지시가 없었던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면 이 또한 제조물결함의 하나로 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소비자가 이미 경험적으로 해당제품의 위험성을 상당부분 인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만일의 법적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표시를 해야만 한다. 거래처에 대한 안전관리의 중요성이 한층 배가(倍加)되는 셈이다. 특히 대형사고의 개연성이 높은 독성가스는 제조 및 판매자 모두에게 세심한 주의가 요구되며 거의 모든 사고에서 제조물책임 공방에 시달릴 수 있는 설비.장비제조업체들은 철저한 품질관리와 함께 ‘표시상의 결함’ 방지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응방안
전문가들은 기업의 도산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치달을 수 있는 PL법에 대비해 국내 산업용가스 업체가 갖추어야할 최소한의 조건으로 다음의 3가지를 강조한다.
먼저 현재 관련업계가 가장 많은 허점을 노출하고 있는 것으로 ‘표시상의 결함방지’를 꼽을 수 있다. 물론 지금도 자사직원들과 고객들에게 정기적 또는 부정기적인 안전관리 교육을 실시하고는 있지만 고압가스의 피해여파에 비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진국들의 예를 볼 때 소비자들이 설계상의 결함보다 표시 및 경고상의 결함을 주장하며 제기하는 소송이 늘고 있다는 점에서 착실한 준비가 요구된다. 설계결함의 경우 기술적 내용이 필수적이므로 일반소비자들의 소송제기가 어렵지만 표시결함은 소비자에게 유리함 판결을 이끌어내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즉 관련업체들은 안전에 대한 과대광고를 삼가하고 고객이 제품정보 및 품질안전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각종 수단을 강구하여 위험.경고.주의 등과 같은 위험의 정도와 위험회피방법 등을 명시해야만 한다.
이때 경고라벨이나 취급설명서 등은 모든 사고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둔 상태에서 생산자(전문가)의 입장이 아닌 소비자의 수준에 맞추어 쉬운 단어와 문장으로 작성, 오해(오판)의 소지를 없애야 하며 제품수명과 동등한 내구성을 지닌 재질로 제작하여 견고하게 부착해야 한다.
두번째로 거래처(소비자)와의 거래시 계약서상에 상호간의 책임관계를 분명히 해둘 필요성이 권고된다. 이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에 따라 자사와 거래처의 책임소재나 책임비율 등을 사전에 정해 놓으라는 의미로 ‘미검용기를 사용하고 있었다면 사고의 원인이 가스에 있다해도 제조사는 최대 ○○%의 책임만 진다’ 등이 좋은 예이다.
물론 이같은 책임소재 및 책임비율의 사전 결정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 법적으로는 제조자의 책임을 배제하거나 제한하는 계약을 한 경우 이를 무효로 하고 면책사유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
그러나 PL법 전문가들은 “이 또한 각 사안별로 법원의 판단에 의해 제조사에 유리한 결정을 얻어낼 수 있으므로 계약관계상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강조한다.
이와 관련 계약서를 포함해 제조, 검사, 관리, 배송, 보수 등 모든 공정관리 기록을 최소한 제조물책임의 소멸시효인 10년까지는 보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PL보험 등 자사가 감당해야할 부담을 분산시켜 놓는 것도 대비책중 하나이다.
제조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다해도 사고는 언제 어디서 어떠한 원인에 의해 발생할지 모르므로 예기치 않은 상황에도 대비해야한다는 것이다.
특히 액메이커나 자가플랜트 등과 달리 충전.판매.설비.수입업체 등 중소기업에게 있어 PL보험은 더욱 절실히 요구되지만 현실적으로 중소업체일수록 취약한 자금구조로 인해 보험가입율은 저조하기 그지없다. 만일에 대비하기 위해 기존 책임배상보험에 비해 50%이상 비싼 보험료를 감수하며 PL보험가입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현재 정부차원의 자금지원이나 PL보험료 인하, 가스분야를 전담하는 PL센터의 필요성 등이 강력히 주창되고는 있지만 아직 가시화된 조치는 취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즉 중소기업들은 중소기업청,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등 관련기관들이 운용하는 보험지원을 받거나 기협중앙회 및 7개 손해보험사들이 공동운영하고 있는 일반 PL보험대비 20～30% 저렴한 단체PL보험에 가입하는 방법이 최선책이다.
지난 6월 11일 금융감독원이 PL법 시행과 관련 제조물책임을 담보하는 보험상품인 ‘생산물배상책임보험'을 인가할 예정이라고 밝혀 기존 ‘가스배상책임보험’에 PL관련 항목을 추가하는 것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한편 제조물책임법에 대한 문의.자문은 산업자원부 PL팀(02-2110-5293), 한국가스안전공사 ISO인증본부(031-310-1512), 중소기업청 기술지원센터 및 지방중소기업청 등에서 받고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