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면 대부분의 업체들은 내년을 위해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신규투자도 가능한 자제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올해 12월 국내 산업용가스 충전소 및 판매업소들은 때아닌(?) 용기구매에 앞다투어 뛰어들었고 지금도 그 열기는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번 용기구매 열풍의 진원지는 다름아닌 군대(軍隊).
지난 11월말경 군대에서 사용했던 고압용기 1만3천여병이 공개입찰을 통해 저가로 유출되면서 신규용기를 구입할 예정이었던 업체들과 저렴한 가격에 미리 여유용기를 비축해 놓으려는 업체들이 뒤섞이며 전국적인 용기구매 열풍으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내년초를 기해 2만여병에 달하는 용기가 추가 반출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내년도 국내 고압용기시장은 군용용기를 확보하기 위한 충전․판매업체들의 구매경쟁과 신규용기시장의 대부분을 의외의 경쟁자에게 강탈당한 용기제조업체들의 한숨이 공존하게 될 전망이다.
□ 군용용기 반출 현황
지난 11월 정부기관의 유휴물품을 일반에 매각하는 조달청 산하 정부물품재활용센터는 고압수소용기 1만3천여병에 대한 공개입찰을 공고했다.
센터가 내놓은 수소용기는 과거 정부에서 대북 유인물 살포를 위해 구입했던 것으로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으로 사용이 전면 중단된 채 군대에서 보유하고 있다가 이번에 매각이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량 6㎥용기이며 한국고압용기(現한국고압실린더) 제품과 외산제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입찰공고 이전부터 이같은 정보를 확보하고 있었던 몇몇 업체가 입찰에 참가했고 K社, S社, I社 등 산업용가스 충전소 3개사와 용기재검사장 운영업체 D社까지 총 4개사가 낙찰업체로 최종 선정됐다. 이중 I社와 D社는 컨소시엄을 구성, 입찰에 참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낙찰업체들은 용기를 즉시 사용할 수 있도록 용기재검사와 외장도색을 완료하고 자체 소비분을 제외한 물량을 여타 충전소 및 판매업소에 판매했다.
낙찰업체들이 주로 서울경인지역에 사업장을 보유하고 있었던 탓에 이 지역의 충전소와 판매업소들에게 먼저 군용 재활용용기의 실체가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전국으로 급속히 소문이 확산되면서 구매요청도 쇄도했다.
용기구매에 성공한 업체 중에는 적게는 수백병에서 많게는 수천병의 용기를 구매한 곳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이러한 대량구매업체들이 이를 다시 수백병 규모로 나누어 재판매하면서 불과 보름여만에 전라도와 부산경남지역까지 군용용기가 확산됐다.
이와 관련 용기의 출처가 군대라는 특수한 집단인데다 군대에서 수소용기를 보유하고 있었던 목적도 공개적으로 밝히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어 센터측이 정보공개를 꺼리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낙찰가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재검사를 마친 용기의 가격이 신규용기의 절반수준으로 형성되어 있는 상황이다.
굳이 신규용기를 구비해야할 필요성이 없는 산업용가스업계의 특성상 이처럼 저렴한 가격에 유통되고 있는 재활용용기의 구입에 전국의 충전․판매업체들이 열을 올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또한 군대에서 10여년이상 사용한 후 수년간 방치됐던 것으로 보기에는 용기의 상태가 예상보다 뛰어나다는 점도 업체들의 구매욕구를 부추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최근 3백여병의 군용용기를 구매한 충전소 A社의 한관계자는 “군용용기의 구입으로 신규용기와 비교해 최소 1천만원이상의 비용을 절감했다”며 “신규용기 못지않게 용기의 상태가 좋아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번 1차 반출에 이어 내년초에도 약 2만여병에 가까운 군용용기가 다시 한번 반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현재 1차 반출된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업체들 대부분이 2차 반출에서 필요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이미 일부물량을 확보한 업체들도 재판매를 통한 수익확보나 여유재고량 비축 등을 위해 관련정보수집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 2005년 고압용기시장 전망
㈜엔케이, ㈜화인텍, 한국고압실린더㈜ 등 국내 고압용기 제조업체들은 국내 신규 일반고압용기 시장이 연간 약 3만~4만병 수준으로 최대 4만병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미 시중에 풀린 1만3천여병의 군용용기에 더해 2만여병의 용기가 추가로 반출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3사는 이번 사태가 자사에 미칠 영향과 그에 따른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가격이 용기구매의 최우선 고려사항이 되어버린 국내 업계의 현실에서 신규용기로는 재활용 용기의 가격을 쫓아갈 수 없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대책마련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최근 철강원재료 가격급등으로 원가부담이 상승하는 등 가격인상요인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군용용기로 인해 오히려 가격인하압력이 거세지고 있어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용기제조업체들은 2차 반출이 소문에 그치거나 예상보다 적은 물량만이 반출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실제 2만여병의 추가물량이 쏟아져 나올 경우 2005년 신규 일반고압용기시장의 80%이상이 잠식돼 한해 동안 내수시장을 거의 포기해야만 한다는 자조 섞인 탄식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3사 모두 내수보다는 해외수출에 주력하고 있어 내수시장 의존도가 비교적 낮고 액메이커, 대형용기, 소방용기, 특수용기 등 틈새시장이 존재하고는 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의외의 악재로 단기간내 3만3천여병의 시장을 잃어버린 후유증은 상당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업계에서는 수소용기의 대량 반출에 따른 안전사고의 가능성을 일부 제기하고 있다.
이는 반출된 용기 모두가 가연성가스인 수소를 충전했던 실린더인데 반해 국내 수소용기의 신규수요나 교체수요는 그리 많지 않으므로 군용용기 구매업체들 대부분이 재검장을 통해 수요가 상대적으로 많은 산소(O2)나 질소(N2)용기로 용도를 변경하여 사용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때 질소(N2)와 같은 불활성가스 용기로 용도를 변경하는 것은 안전측면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지적이지만 산소(O2)용기로의 용도변경은 가연성가스(H2)와 조연성가스(O2)의 접촉에 의해 폭발의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용기재검장 운영업체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수소용기를 산소용기로 용도변경해 달라는 요청은 거의 없었지만 가끔 이러한 요청이 들어오면 안전의 위험성을 들어 가능한 만류하는 것이 상례였다”며 “용도변경 과정에서 불활성가스로 퍼지(purge)하거나 물 등으로의 세척한다해도 용기내부의 미세공간에 잔존 수소가스가 남아있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