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세계 각국은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에 맞설 차세대에너지로서 수소(H2)를 낙점하고 미래 에너지패권 장악을 위해 관련기술개발에 매년 4~5조원의 자금을 앞다투어 쏟아 붓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지난 2003년 이후 과학기술부와 산업자원부를 중심으로 고효율수소에너지제조․저장․이용기술개발사업단(단장 김종원), 수소연료전지사업단(단장 홍성안), 원자력수소사업추진반(단장 박창규), 미래형자동차기술개발사업단(단장 유영면) 등 대형 국책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하며 에너지 자립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한 NGO(비정부기구)가 ‘수소경제는 없다’라는 요지의 수소경제 무상론을 제기, 수소경제시대의 실체를 놓고 NGO와 수소학자들 사이에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해외의 일부 에너지 및 수소분야 전문가들이 수소경제 실현의 기술적․비용적 한계를 들어 수소에너지의 성공가능성에 부정적 의견을 표명한 적은 있지만 국내에서 이같은 주장이 공론화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번 논쟁은 수소의 기술적․현실적 한계가 아닌 수소경제의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어서 양측의 논리공방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논쟁의 발단, 반론과 재반론
이번 논쟁의 발단은 지난 3월18일 에너지대안센터(CEA) 대표인 이필렬 방송통신대 교수가 한겨례신문에 ‘수소경제는 없다’라는 제하의 칼럼을 게재하면서 촉발됐다.
이 교수는 칼럼에서 수소경제 초기에 인류는 천연가스(NG) 증기개질 등을 통해 수소를 생산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친환경에너지인 수소를 만들기 위해 기존 화석연료를 사용해야하는 수소경제는 결국 허상이며 화석연료시대의 연장에 불과하다고 피력했다.
그는 또 물전기분해 수소생산의 경우에도 전기에너지를 석유나 원자력으로 생산하는 이상 진정한 수소경제가 될 수 없으며 기후변화, 고유가, 핵폐기물과 같은 골칫거리들이 오히려 심각해질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따라 이 교수는 1년간 지구에 유입되는 햇빛에너지가 인류가 1년간 소비하는 에너지의 1만5천배에 달한다는 점을 들어 수소가 아닌 태양에너지를 활용하는 ‘태양경제’로의 사고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내용의 칼럼이 게재된후 수소연료전지사업단 홍성안 단장은 국내 수소에너지 전문가들을 대신하여 같은달 27일 ‘수소경제는 있다’라는 제목의 반론을 제기했다.
홍 단장은 반론문을 통해 “현재는 수소를 경제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아 석유․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에서 직접 수소를 추출해 사용하고 있지만 이는 수소경제로 나아가기 위한 과도기적 현상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홍 단장은 이어 “화석연료를 활용한 물전기분해는 경제성이 없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는 방식이며 향후 수소는 화석연료가 아닌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와 제4세대 원자로(원자력수소), 바이오, 광촉매 등을 통해 생산될 것”이라고 밝혔다.
즉 이 교수가 우려하는 화석연료에 의존한 수소생산은 수소경제 초기에 수소에너지의 기술개발과 상용화를 견인하기 위한 과도기적 현상일 뿐이며 전세계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진정한 의미의 수소경제는 수소제조기술, 인프라기술, 연료전지기술이 일상화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후 홍단장의 반론에 대해 CEA의 홍진혁씨가 대량수소생산의 최선책으로 지목되고 있는 원자력수소의 위험성을 집중 거론하며 ‘수소는 태양경제의 일부일뿐’이라는 재반론을 펼쳤고 이는 다시 한국원자력연구소 박원석 박사의 ‘수소경제는 현실이다’라는 재재반론을 이끌어냈다.
현재 CEA 염광희 간사의 ‘지속가능한 수소경제를 위해’라는 재재재반론까지 개진된 상황으로 지면을 통해 CEA 회원들과 수소에너지 전문가들이 자존심을 걸고 총성 없는 논리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 친환경 수소경제의 虛와 實
'수소경제(hydrogen economy)'라는 용어는 전기화학자인 보크리스(Jhon OM Bockris)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세계적인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지은 '수소경제(The Hydrogen Economy)'라는 저서를 통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올해 1월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했던 제레미 리프킨은 이 책에서 곧 석유시대의 종말이 찾아오게 되고 지구상에서 가장 풍부한 자원인 수소가 석유를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현재까지 리프킨의 이같은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다.
에너지 전문가들에 따르면 석유는 향후 40년, 천연가스는 60년이면 지구상에서 완전히 고갈될 것이며 우리의 손자들은 휘발유자동차를 박물관이나 시대극을 통해서나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화석연료시대의 종말에 맞서 수소가 차세대에너지로서 각광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수소는 연료로서 활용성이 높은 고효율에너지이자 자원고갈의 우려가 없는 물(H2O)을 원료로 할 수 있는 무한에너지이다.
또한 수소는 물에서 탄생해 물로 돌아가는 최상의 무공해 친환경 에너지이며 운송수단의 연료는 물론 연료전지를 통해 난방과 전력까지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에너지 자원이기도 하다.
실제로 물을 원료로한 수소경제가 구현될 경우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 모든 국가가 에너지독립의 꿈을 이루게 된다.
전세계 각국이 수많은 기술적 난제에도 불구하고 수소에너지 관련 기술개발에 연간 4조원이 넘는 막대한 자금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반면 에너지로서 지닌 수소의 탁월한 메리트만큼 수소경제를 구현하기 위해 넘어야할 수많은 난제와 극복과제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CEA측의 지적처럼 기술적․비용적 문제로 인해 앞으로 최소 10여년이상은 천연가스 등의 화석연료를 원료로 수소를 생산하게 된다.
한시적이기는 하지만 화석연료의 고갈에 대비하기 위한 차세대 에너지를 화석연료에서 뽑아쓰는 기형적 수소경제가 전개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도기를 넘어서더라도 수소는 대량생산이라는 과업 앞에서 원자력이라는 만만치 않은 벽과 맞서야 한다.
국내 연료전지 도입목표에 따른 수소 필요량을 나타내는 [표-1]에서 가늠할 수 있듯이 국내 전체 에너지체제를 화석연료에서 수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량의 수소가 필요하지만 현재의 기술수준에서 이처럼 대량의 수소를 일거에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은 제4세대 초고온원자로의 열(heat)에너지를 활용한 고온수증기전해법(일명 원자력수소)이 거의 유일하기 때문이다.
우라늄 또한 언젠가 고갈될 수밖에 없는 유한자원이며 원자력발전소 1기를 추가 건설하기 위해 겪어야할 수많은 사회적 진통은 차치하고라도 가장 비(非)환경적이고 위험한 에너지로 인식되고 있는 원자력을 통해 친환경 수소를 생산한다는 사실에 일반대중들이 얼마나 수긍할지조차 의문시되는 실정이다.
특히 CEA측이 왜 반박재료로 활용하지 않았는지 의구심이 들만큼 수소경제는 앞으로 수소의 제조, 저장, 활용, 인프라 등 모든 측면에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술적 과제들을 해결해내야 현실화될 수 있는 개념이다.
덧붙여 상업성과 맞물린 비용(가격)문제도 수소경제 구현의 최대 아킬레스컨 중 하나로 꼽힌다.
일례로 수소경제의 핵심 어플리케이션인 수소연료전지자동차가 휘발유자동차와 유사한 수준의 상업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현재의 제작단가(약 8억원)를 무려 95%이상 낮추어야 하는데 이는 자동차 및 부품제조업체들의 대량생산체제 전환만으로는 이루기 힘든 과제로서 사업초기 정부차원의 대규모 금전지원이 불가피하다.
□ 명분싸움 보다 발전적 논의를
위에 언급한바와 같이 수소경제는 허와 실의 양면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는 비단 수소경제에 부정적 의견을 가진 인사들뿐 만아니라 수소경제의 도래를 확신하고 있는 수소 및 에너지전문가들도 이미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특히 수소전문가들조차 최종단계의 수소경제는 자연에너지(재생에너지) 특히 태양에너지를 활용해 경제적으로 대량의 수소를 생산해내는 것으로 믿고 있다는 점에서 CEA의 '태양경제론'과 일정부분 일맥상통한다.
실제로 태양에너지로부터 얻은 전기를 활용해 물전기분해 및 직접광화학반응 방식으로 대량의 수소를 경제적으로 생산해낼 수만 있다면 대기공해, 지구온난화, 국가에너지독립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궁극적 의미의 친환경 무한 수소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반면 태양에너지 자체를 활용한 태양경제를 추진해야 한다는 CEA의 주장은 현재로선 이상적인 가치에 불과하며 수십년내에 한 국가 또는 전세계의 에너지시스템을 변혁해야하는 현 시점에서 시기적으로, 기술적으로 현실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다시말해 이미 기술된 모든 요인들을 고려할 때 수소경제가 태양경제의 일부가 아니라 태양경제가 수소경제의 일부이며 점차 그 비중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보다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수소경제로의 전환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사항이 아니다. 우리 눈앞에 던져진 당면과제이자 전세계적인 흐름임을 직시해야 한다.
발전적 방향의 비판과 토론은 대승적 차원에서 언제든 수용해야 하겠지만 대안 없는 질책이나 비판을 위한 비판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후발주자로서 미국, 일본, 독일 등 수소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세계적인 에너지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 실익 없는 명분논쟁을 멈추고 우리 실정에 걸맞은 최적의 수소경제 구현을 위해 의견을 모아야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