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원전 확대
재생E·이차전지 타격

그동안 초미의 관심사였던 미국 제47대 대통령 선거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승리로 끝나면서 전 세계가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와 함께 그가 내세운 주요 정책들이 산업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있다.
현재 각국에서는 무역적자 해소를 통한 경제 재건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기후변화를 거대한 사기극으로 규정 ▲석유·셰일가스 개발 적극 지지 ▲중국 견제 차원에서 웨스팅하우스로 대표되는 원전사업 옹호 ▲미국판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 등을 주요 골자로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삼정KPMG 경제연구원이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국내 산업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정책이 ▲반도체 ▲자동차 및 이차전지 ▲에너지 ▲조선 ▲건설 ▲농식품 ▲방위 ▲인공지능(AI) 등 국내 주요 산업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이번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를 다섯 가지 주요 키워드로 요약해 ‘T.R.U.M.P’를 제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2기는 상호무역법 제정과 양자 간 무역협정 강화 등을 통해 무역 적자 해소와 미국 일자리 보호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즉 보호무역주의 심화가 미국과 중국 간 고율의 보복 관세 전쟁으로 격화, 전 세계 GDP 및 무역량 감소로 이어져 수출 위주의 한국 경제는 일정 수준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이 때문에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CHIPS Act) 등을 통해 바이든 정부의 지원을 받고 대미 투자를 늘린 한국 반도체·전기차·배터리·태양광 기업들은 우려가 큰 상황이다.
우선 이번 트럼프 당선으로 향후 반도체 보호무역주의가 전반적으로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며 특히 중국에 대한 더욱 직접적이고 확대된 범위의 규제를 내세우며 첨단 반도체 기술 패권 확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울러 트럼프는 반도체 지원법에 비판적 입장을 보여 반도체 지원법 일부 수정 또는 축소 가능성이 있어 국내 반도체 산업의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자동차와 이차전지 산업 역시 미국향 완성차 수출에 관세 인상 및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 축소 가능성이 높아 전기차를 포함한 완성차의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자동차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조항도 축소될 경우 국내 이차전지 기업의 수익성이 크게 저하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 인수팀이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추진된 최대 7,500달러 규모의 전기차 보조금 혜택 폐지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보조금 정책이 사라질 경우 미국의 전기차 전환 계획에 막대한 차질이 불가피하고 미국 정책을 믿고 대미 투자에 나선 우리 기업들의 피해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운동 기간 수차례 바이든의 ‘전기차 의무화’ 정책을 폐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기차는 너무 비싸고 주행거리가 짧으며 대부분 중국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 트럼프의 주장이다. 그는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두고 ‘그린 뉴 스캠(사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미국 최대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를 이끄는 머스크 CEO역시 트럼프 측에 보조금 폐지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점이다. 테슬라는 바이든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혜택의 최대 수혜자였으나 자신들은 혜택이 사라져도 충분히 생존할 수 있는 반면 경쟁사들은 치명적인 피해를 볼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머스크 CEO는 현대·기아차 등 외국 전기차 업체들에게 리스(임대) 옵션 등을 통해 세제 혜택이 돌아가는 것에 크게 불만을 표출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인수팀은 다만 IRA에 담긴 청정에너지 정책의 일부는 폐지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는 IRA 자금은 공화당이 정부를 장악한 주를 포함해 각지에 이미 배분되기 시작했고 공화당 지역에서도 IRA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기 때문이다. 트럼프 인수팀은 전기차 세액공제 폐지를 더 큰 세제 개혁 법안의 일부로 담을 경우 공화당 의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가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취소할 경우 미국 정부의 정책을 믿고 대규모의 투자를 단행한 완성차 업체들과 배터리 업체들에게 상당한 혼선이 예상된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특히 IRA상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혜택을 받기 위해 미국 현지에 조 단위의 투자를 단행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둔화)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배터리 업계에 악재가 겹치는 셈이다.
이어 ESG 측면에서 전임 바이든 행정부와 반대 입장을 보여 온 트럼프는 친환경, 에너지 관련 규제 완화를 통한 저가 에너지 정책으로 제조업 중심의 경제 성장에 방점을 두고 있다. 무엇보다 기존에 규제를 강화했던 화석연료 생산을 확대하고 파리 기후협약 재탈퇴와 함께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인 입장을 밝혀왔던 바 에너지 규제 완화, 화석연료 및 원자력 생산 증대 등으로 장책 방향을 설정할 전망이다. 이에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기업들은 ESG 관련 부담은 완화되지만 에너지 전환 속도는 늦춰질 것이란 관측이다.
트럼프는 그동안 탈탄소를 목표로 한 ‘그린 뉴딜’에 반대 입장을 고수해 왔다. 기후 위기에 대해서도 트럼프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역대 최악의 사기 중 하나’라고 표현하며 재생에너지 확대에 회의적이다. 
반면 석유·천연가스·석탄 등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관련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여러 번 밝혔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아직 ‘비싸고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하며 값싼 원료로 높은 효율을 거둘 수 있는 화석 연료나 원자력이 효율적이라는 입장이다. 즉 천연가스와 석유 생산 확대를 통해 에너지 자립을 강조하고 경제적 비용 절감을 목표로 삼고 있는 2기 트럼프 행정부는 석유, 천연가스, 원자력 등 전통 에너지원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트럼프의 이번 선거 공약을 담은 공약패키지인 아젠다47에는 기존 원전 이용 확대, 선진 원자로 개발 등 내용이 담겨있다. 원전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 원전 관련 규제 완화 기대감이 큰 이유다. 특히 차세대 전력원으로 주목받고 있는 ‘미니 원전’인 소형모듈원전(SMR) 산업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이밖에도 조선 분야에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화석연료 중심으로 에너지 정책 변화를 추진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액화천연가스(LNG)·액화석유가스(LPG) 수요 및 수출이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친환경 에너지로 넘어가는 중간단계로 여겨지는 브릿지 에너지 운반선 건조에 강점을 지닌 한국의 조선산업은 수혜를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트럼프 정책 기조는 화석연료나 원자력 기업에는 긍정적이지만 태양광이나 풍력, 수소 등 신재생에너지와 관련된 산업은 타격이 예상된다. 특히 친환경 보조금 축소로 인한 사업성 악화 등으로 미국 내 신재생 발전 프로젝트에 직접적인 타격이 발생하고 발전 기업뿐 아니라 신재생에너지 관련 부품제조 및 솔루션 기업 등도 대미 수출이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재생에너지의 몰락 현실로?

하지만 이러한 전망과는 반대로 트럼프가 전 세계적인 재생에너지 전환 흐름을 거스르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오히려 재생에너지 산업이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탈퇴했던 파리기후협정(COP21)도 바이든 행정부에서 재가입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또한 재생에너지가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내수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경제적 효과를 무시할 수도 없다는 주장이다.
트럼프의 강력한 지지층인 공화당 텃밭에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높다는 것 또한 고려 요소다.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한 텍사스 주와 아이오와 주, 캔자스 주, 사우스 다코타 주, 오클라호마 주, 노스 다코타 주 등은 모두 미국 내 풍력 발전량이 높은 지역들이다. 
다만 트럼프가 바이든 정부의 행적을 지우기 위해 적극적인 친환경 규제 완화 정책을 펼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중시하던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와는 다르게 흘러 갈 것은 자명하다”며 “다만 트럼프가 선거 캠페인에서 내세운 공약의 기조는 변하지 않아도 정책 수립 과정에서 현실적인 점을 조율하다 보면 트럼프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 ‘위기이자 기회’
수익성·ESG 동시 고려한 전략적 대응 필요

한편 삼정KPMG는 2기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한국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며 국내 기업들이 변화하는 미국 정책에 대응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했다.
먼저 미국의 친환경 규제 완화로 인해 재생에너지 관련 제품의 수요가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관련 제품과 기술을 수출하는 국내 기업들은 미국 외에도 수요가 유지되는 유럽연합(EU)과 중국 등으로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특히 유럽연합과 중국은 친환경 관련 수요가 여전히 높아 이러한 시장을 공략해 리스크를 분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트럼프의 화석연료 지지 정책에 따라 에너지 비용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이에 대응해 한국 기업들은 화석연료 관련 제품과 기술의 가격 경쟁력을 높일 필요가 있으며 화석연료 수요 증가로 인해 원가 절감이 가능해질 수 있는 만큼 한국 기업들은 가격 전략을 강화해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한국 조선업계는 트럼프의 에너지 정책 기조에 따라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 LNG 및 LPG 운반선 수요에 대비해 기술력을 확보하고 관련 생산 역량을 확대해야 함은 물론 조선업계가 수주 경쟁력을 유지하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관련 기술 개발과 생산 역량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화석연료 및 원자력 지지는 단기적으로 글로벌 기후 변화 대응 노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유럽연합과 중국 등 주요국들은 여전히 친환경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들은 화석연료 산업뿐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재생에너지와 ESG 분야에서도 대비책 마련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미국의 2기 트럼프 행정부 집권에 따른 정책 변화는 한국 기업들에게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변화하는 글로벌 정책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국내 기업들이 정책 변화를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기회를 포착하고 리스크를 최소화함은 물론 수익성과 ESG 가치를 동시에 고려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