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 인근에 터를 잡고 있는 산업용가스 판매업소들이 요즘 세(貰) 사는 설움을 톡톡히 받고 있다.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도시개발에 따라 기존 사업장에서 내몰린 판매업소들이 새로운 사업장 부지를 마련하지 못해 집없는 기러기 신세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판매업소 A社는 10여년이상 정든 사업장을 뒤로하고 부득이 인근의 한 판매업소 사무실에 더부살이를 들어갔다. 건물주변에 아파트가 새롭게 들어서는 등 재개발이 이루어지면서 건물주가 리모델링을 이유로 사무실을 비워줄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압가스라는 위험물을 취급하는 A社를 선뜻 받아줄 용기있는(?) 건물주를 찾지 못했고 허가권 유지를 위해서는 영등포구를 떠날 수도 없어 결국 더부살이라는 최후의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
이처럼 리모델링이나 재개발을 이유로 사업장을 잃어버린 판매업소들이 돈이 있어도 새롭게 입주할 사무실을 찾지 못해 생존을 위협당하는 일이 최근 빈발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자가 건물(부지)를 소유하지 못한 대부분의 판매업소들이 오래되고 낡은 건물에 세살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건물들이 재개발의 주요 타킷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일반고압가스협회(회장 이경초)에 따르면 서울의 영등포구, 양천구, 강서구 등지에서만 도시개발의 뒤안길에서 사업장을 이전했거나 이전해야할 처지에 놓여있는 업체가 대략 20~30개소에 육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나마 A社처럼 기존 판매업소들과 공동사업장이라도 마련할 수 있는 업체들은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마지막 상황에 몰린 일부 업체들의 경우 현재의 지역구에 사업권만을 살려놓고 실제 사업장은 타지역으로 이전하여 장거리 원정 판매를 하는 극약처방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당장 사업장을 물색해야할 정도의 위험에는 처해있지 않더라도 위험물 취급업소라는 원죄(原罪) 탓에 마음 편히 사업을 영위하지 못하고 주변 상가나 사무실의 눈치를 봐야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판매업소 B社의 관계자는 “고압가스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과 용기 입출고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위층 사무실에서 건물주에게 잦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 같다”며 “혹시 재계약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부담감에 가능한 조심스레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서울은 물론 대도시에 사업장을 갖고 있는 거의 모든 업체들이 이와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을 것”이라며 “불황에 따른 매출악화나 고질적인 인력난보다 사업장 확보가 오히려 판매업소들에게 더 다급한 현안 문제”라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 업계전문가들은 앞으로 도시개발은 한층 가속화될 것이므로 지금과 같은 미봉책이 아닌 근본적인 해결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지난 수년간 고압가스협회가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판매업 집단화’ 사업을 가장 현실적인 대책으로 꼽고 있다.
실제로 정부 또는 자치단체가 소유한 부지를 임대, 공동 용기저장소를 구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집단화 사업은 주민들의 민원을 최소화하면서 안정적인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윈-윈 전략’이며 이미 부산 등 일부지역에서 실시해 성공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행정기관들은 법적규제와 단속의 잣대를 들여대기 이전에 관련업계의 고충을 이해하고 함께 대안을 모색하려는 전향적인 자세를 견지해야하며 판매업소들도 공존번영을 목표로 일치단결하여 보다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해야만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