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수소 자동차를 실용화하는 데 꼭 필요한 열쇠인 수소 상온 저장 방법을 찾아낸 임지순 박사는 학술제 발표 이후 정신없이 시간이 갔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연구결과 발표 후 쏟아지는 언론의 인터뷰와 해외출장 등으로 인해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면서 너무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수소연료 저장 물질의 구조를 설계해 물리학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에 이름을 올린 임지순 박사.
지금껏 미래에너지의 가장 큰 대안으로 꼽혀온 수소에너지는 수소를 대량으로 안전하게 저장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현재 실험용 수소차는 고압(350기압)으로 탱크에 충전하는 방법을 쓰고 있으나 폭발 위험이 있어 실용화에는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또 휘발유 자동차의 연료통만한 크기의 탱크에 수소를 가득 충전해도 수소차는 휘발유차의 2분의 1밖에 연비를 내지 못하는 등 효율도 문제다.
임 교수팀은 폴리머란 물질에 티타늄이란 금속 원자를 섞으면 이런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발견하고 슈퍼컴퓨터로 물질 구조를 설계해 성질을 계산한 결과 압력을 가하지 않아도 물질 내 원자들 사이사이에 수소가 가득 들어차는 것을 발견했다.
압력을 가하지 않아 폭발 위험이 없고 이 물질로 수소 저장장치를 만들면 같은 크기의 고압 수소탱크보다 세 배나 많은 수소를 저장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같은 임지순 박사의 연구 성과는 또 한번의 한국과학의 쾌거로 일컬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탄소 나노튜브 관련 논문 40여 편을 써내 이 중 3편을 사이언스와 네이처지에 게재하고 1998년 탄소 나노튜브를 다발로 묶으면 반도체 성질을 띤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낸 임지순 박사는 차세대 반도체 원료로 주목받고 있는 탄소 나노튜브 연구 분야에 세계적 권위자로 통한다.
2000년에는 미 버클리대와 공동으로 탄소 나노소자를 십자형으로 포개면 트랜지스터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내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는 삼성전자 등과 손잡고 탄소 나노튜브를 이용한 차세대 디스플레이 개발 등에 주력해 왔다.
임지순 박사는 이번 연구를 2004년 하반기 시작했다.
미래 세계 경제를 좌우할 에너지 주도권을 한국이 쥐기 위해서는 수소에 대한 연구가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본래 자신의 연구 분야인 나노연구를 뒤로하고 미래의 대체 에너지인 수소분야 연구에 뛰어든 지 2년 만에 너무도 큰 성과를 이뤄낸 데에는 남다른 연구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래에너지와 관련된 것이라 외국과 공동연구를 포기하고 타 대학 두 팀과 저희 대학원생 3명과 연구를 진행 했습니다. 저희 연구원들이 주도적으로 신물질 아이디어를 냈기에 가능했던 일이지요.”
임박사의 말처럼 그는 이번 연구 성과에 대해 자신의 업적보다 자신과 함께한 연구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밝힌다.
한편 임지순 박사는 이번 연구로 수소자동차 실용화가 당장 다가온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제 물질을 설계해 합성을 한 단계이지 실제 저장장치를 만든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수소자동차가 실용화되려면 저장장치 말고도 엔진 등 다른 분야의 기술도 함께 개발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실용화가 되려면 적어도 수소저장만으로 본다면 2010년경에는 완전히 쓸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분명한 것은 현재 저장에 관해서는 우리가 미국보다는 빠르다고 봅니다”
임지순 박사는 논문 발표 시기를 놓고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논문의 내용은 물질을 설계한 내용만 담고 있기 때문에 설계 결과를 너무 빨리 발표하면 물질을 합성하는 기술이 뛰어난 외국의 연구진이 한발 먼저 합성물질을 만들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무작정 발표를 미루자니 외국 연구진이 비슷한 결과를 먼저 발표해 특허를 선점할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설계가 끝나고 합성까지 성공한 단계에서 논문을 제출했다.
임지순 박사는 연구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연구비 문제는 성균관대 나노튜브 및 나노복합구조연구센터(CNNC)와 함께 정부의 BK21 사업의 연구비 지원을 받고 있어 연구에는 어려움이 없다고 말한다.
현재 연구 진행단계는 이는 제3의 국내 연구진에 의해 물질합성이 지난해 말 시작해 최근 성공했다고 밝혔다.
현재 합성한 물질의 수소연료 저장 능력(계산치 만큼 저장할 수 있는지)을 확인하고 있다.
임 박사는 “현재는 외국에 합성 관련 정보가 새나갈 수도 있어 성능을 확인할 때까지 물질을 합성한 연구진을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논문을 발표하고 그동안 정신없이 생활하고 있다고 밝힌 임지순 박사는 수소경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
“요즘 수소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들도 나오고 있긴 하지만 제가 볼 땐 분명 수소경제 시대는 도래 할 것입니다. 연료전지나 기타 신재생에너지도 물론 각광을 받겠지만 그것은 일부를 충족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자신이 그동안 연구해왔던 나노튜브 분야를 뒤로하고 수소에너지 쪽에 뛰어든 데는 앞으로 도래할 수소경제를 하루빨리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임지순 박사.
현재 세계 각국이 석유자동차를 대체할 제품으로 수소에너지 개발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미래에너지 분야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려면 임지순 박사의 말처럼 수소경제를 어떻게 대비하느냐가 가장 큰 쟁점인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