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을 총칭하는 한자 ‘금(金)’은 ‘황금(黃金)’이라는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일종의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인 셈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2004년 3월 현재 쇠붙이는 실제로 황금과 같은 뜻이 되어 버렸다.
전국의 각 자치단체들이 공무원과 주민을 동원하여 대대적인 고철 수집에 나서고 있으며 컨테이너 박스나 경운기의 적재함은 물론 도로교통 표지판과 하수구 뚜껑까지 사라지는 웃지 못할 상황이 저녁뉴스의 머릿기사를 장식하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이 바로 현재 전세계 산업계를 초비상 상태로 몰아가고 있는 ‘철강 파동’의 한 단면이다.
산업용가스업계의 경우 언뜻 생각하면 이번 철강파동과 무관할 것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이미 많은 부분에서 직간접적 영향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철강파동의 원인과 현황, 국내 산업용가스업계에 미치는 파급효과 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전세계 철강 소비의 블랙홀 中國
철강 품귀현상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제기되고 있지만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중국이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철강의 대부분을 싹쓸이(?) 함으로서 이같은 상황이 초래됐다는 주장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철강 생산 및 소비는 지난 95년이후 매년 평균 20% 이상 급증하고 있는데 2008년 북경 올림픽을 앞두고 건설특수가 일어나면서 지난 2002년 전세계 철강 소비량의 25%(2억1천1백만톤)를 중국 혼자 담당한데 이어 올해에도 연간 총 2억9천5백만톤의 철강재를 소비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중국이 철강소비의 블랙홀로 작용, 국제 고철 품귀가 나타났고 뒤이어 이를 원료로 사용하는 철강 반제품들이 영향을 받으며 도미노 현상을 일으켰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미국 등 선진국들의 경기회복으로 인한 국제 원자재 수요 증대도 철강파동을 앞당긴 요인의 하나로 지적된다.
이와 관련 일부 전문가들은 국내의 경우 정부의 안이한 대처가 시장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고 보고 있다.
이미 지난해 하반기이후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중국으로 인한 원자재 파동과 수출 채산성 악화, 물가 불안 등의 가능성이 대두됐지만 정부는 이러한 경고를 무시하고 사태가 악화될 때까지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정부는 지난해 말 국제시세 및 원자재 가격상승을 감안한 철강업계의 가격인상을 담합으로 판정, 7백40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철강업체들은 인상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인상을 단행하지 못했고 파동을 막기 위한 적극적인 생산확대에 나설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와 같은 요인들의 복합작용으로 인해 공급부족 사태가 발발했으며 값이 오를 것을 예상한 일부 무역상 및 자재공급업체들의 사재기와 매점매석으로 철강품귀는 더욱 가속화됐다.
증산, 수출중단 등 내수 확보 주력
철강파동이 본격화되자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 각종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동국제강, INI스틸 등이 내수물량 확보를 위해 철강제품 수출중단을 선언한 가운데 지난 8일 정부는 철근, 철스크랩 등 철강제품에 대한 한시적인 강제 수출제한 조치를 단행했다.
또한 매점매석행위 신고센터를 설치.운영하는 한편 원자재 가격 집중 모니터링, 정부 비축물자 방출, 니켈괴 등 8개 품목에 대한 할당관세 적용 등이 실시됐다.
특히 지난 16일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이 주재한 원자재 수급대책회의에서는 철근 3만톤 긴급 수입, 할당관세 추가 확대 등이 논의되기도 했다.
메이저 철강업계도 생산량 증대를 통한 공급량 부족 해소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INI스틸이 이달부터 11만톤(철근 6만톤, H형강 5만톤)을 추가 생산하고 있으며 포스코는 후판 29만톤, 주물선 5만톤, 연강선재 1만5천톤의 증산에 돌입했다.
동국제강 또한 지난 5일 후판 1만톤 증산에 이어 현재 총 11만톤의 철강재를 추가 생산중이다.
덧붙여 철근업계는 중간 유통상의 사재기 방지를 위해 직공급 비중을 기존 25%에서 40%까지 확대키로 결정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일부 품목에서 수급안정화 경향이 보여지고는 있지만 이미 철강 원자재 가격이 오를대로 오른 상태여서 최종 철강소비처들의 부담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원가상승분을 전가시킬 수 있는 1차 업종(철강메이커, 대형수요처)과 달리 대다수 2차 업종(중소 철강소비업체)들은 경기악화에 따른 경쟁심화로 원가부담을 자체 흡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오는 2010년까지 중국의 철강소비가 전세계 철강시장의 30%를 넘어서며 국제 철강가격을 좌지우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정부의 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산업용가스업계 파급효과
이번 철강 파동으로 가장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산업용가스 분야는 단연 철강원자재를 사용하는 장비.설비 업종이다.
특히 초저온용기(LGC), 고압용기, 저장탱크 등의 제조업체들은 철강 대란(大亂)의 한가운데 서서 정면으로 폭풍을 맞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엔케이, 한국고압실린더, 화인텍 등 고압용기 제조업체에 따르면 고압용기 제조에 사용되는 원관의 가격이 15%가량 인상됐으며 소형 파이프라인의 가격은 무려 40%이상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원자재 가격이 대폭 상승했지만 이들 업체들은 제품가격을 인상하지 못하고 있다. 업체간 경쟁이 심해 단독적으로는 가격을 인상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부 업체의 경우 이번 철강파동 이전에 확보한 원자재로 생산한 물량을 비교적 싼 가격으로 시장판매를 주도하고 있어 단기적인 승부수를 던질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는 주문량을 제때 공급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결국 수요처에 대한 거래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A社의 한 관계자는 “현 국내 고압용기업계의 실정은 빵보다 비싼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팔아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물론 한중CIT, 동아화공기, 부영기공 등 저장탱크 제조업체들도 상황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발주가 밀려와도 철판을 구하기가 어려워 애를 먹기는 마찬가지다.
단지 LGC제조업체인 한비의 경우 한국초저온용기, 두진 등 수입업체들의 수입가격이 인상된 만큼 적정수준의 가격인상을 실시할 계획이다.
한비의 관계자는 “오는 4월부터 평균 10만원 정도의 제품가격을 인상할 예정”이라며 “이에 대한 고객들의 이해와 협조를 부탁하는 공문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Taylor-Wharton社와 Chart-MVE社의 경우 지난달 철강원재료의 가격상승에 따라 한시적으로 철강을 재료로 사용한 제품의 가격을 인상한다는 내용의 긴급 보도자료를 발표하고 Taylor-Wharton社는 지난달 15일부터, Chart-MVE社는 이달 1일부터 인상된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이와 함께 철강업체로부터 잉여가스를 공급받고 있는 업체들도 철강파동의 후폭풍을 맞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다수 철강메이커들이 증산에 나서고 있어 잉여가스 발생량이 급격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의 잉여가스 생산처인 포스코를 예를 들면 포항공장은 예년과 유사한 정상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광양공장은 지난해말이후 액체질소(LO2)를 제외한 잉여가스는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올해초 실시한 잉여가스 전자입찰에서 광양공장 액체산소(LO2)가 결국 유찰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조선, 자동차 등 대규모 철강 소비업체들을 고객으로 삼고 있는 충전소나 탄산메이커, 수소메이커들도 이번 사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이는 고객사가 철강원재료 구입을 위해 막대한 현금을 사용해버림으로서 현금유동성이 좋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자측에 속하는 산업용가스 업체에 대한 대금지급을 미루고 있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