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의 고갈에 따른 에너지 대란(大亂)이 예고되고 있는 가운데 전세계적으로 차세대 친환경 에너지로서 수소(H2)에 대한 관심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미 미국이 올해초 대통령 연두교서를 통해 향후 5년간 17억달러를 수소기술 개발에 투자하겠다고 밝혔으며 일본도 지난 10년간 약 1천6백억원을 수소기술개발에 투자한데 이어 오는 2007년까지 수소관련 기반기술 개발에 6천억원을 추가로 투입키로 결정했다.
우리나라 또한 지난 8월 노무현 대통령이 ‘수소자동차 개발’을 국내 10대 성장동력의 하나로 선정하면서 본격적인 수소관련 기술 개발경쟁에 뛰어든 상태이다.
이러한 수소에너지경제와 관련 수소연료전지, 수소자동차 등 응용기술과 함께 향후 전세계 수소 패권을 결정지을 근간기술로 ‘대량수소생산기술’이 지목되고 있으며 그 선두에 바로 원자력과 수소를 결합시킨 ‘원자력수소’가 있다.
이에 국내 원자력에너지 및 원자력수소 정책의 실무를 관장하는 ‘과학기술부 원자력국 조청원 국장’을 만나 원자력수소의 의미와 가능성, 국내외 현주소와 미래비전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 ‘원자력 수소’의 개념과 도입배경은.
원자력수소는 원자로(原子爐)에서 생성되는 고효율 열에너지를 통해 열화학적 방식으로 대량의 수소를 생산해내는 기술을 의미한다.
이러한 원자력수소의 개념은 지난 2001년초 한국,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9개국이 ‘제4세대 원자로(Gen Ⅳ)'의 개발을 위한 국제포럼을 결성하면서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각 국 대표들은 원자력에너지를 전력 이외의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다각적으로 논의했는데 일반적인 원자로가 300℃ 수준의 열(heat)을 발생하는 것과 달리 HTGR(고온가스냉각원자로)로 대변되는 4세대 원자로는 각종 화학반응에 이용가능한 950～1000℃의 열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전력생산에 사용하고 남는 열에너지를 수소생산에 활용하자는 아이디어가 제기됐다.
□ 우리나라에 있어 ‘원자력 수소’ 기술개발이 갖는 의미 및 중요성은.
우리나라는 전체 사용에너지의 약 9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절대적 에너지 빈국이다.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물(H2O) 만으로도 무한정 생산해 낼 수 있는 수소는 에너지의 해외의존도를 줄이고 대한민국을 에너지 부국으로 이끌어낼 핵심 자원이다.
이에따라 현재 과학기술부, 산업자원부 등 관련 정부부처는 늦어도 오는 2020년까지 국내 에너지 수요의 약 10～20%를 수소로 대체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이러한 계획이 실현된다면 국가적으로 막대한 부가가치효과를 누릴 수 있다.
현실적으로 수소의 생산방법은 다양하지만 진정한 에너지 독립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자체 기술로, 가장 경제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에너지기후협약에 저촉되지 않는 방법으로 수소를 생산해내야만 한다.
원자력 수소는 이에 부합하는 최상의 수소제조법 중 하나이며 지금은 2020년의 대한민국 에너지구조 변혁을 위해 철저한 연구와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 과기부가 추진중인 ‘원자력수소’ 기술개발 정책에 대해.
현재 과기부는 한국원자력연구소(KAERI),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KIER),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 국내 최고수준의 3대 국가연구기관을 연합해 원자력수소 공동연구개발 프로그램을 진행중에 있다.
원자력硏은 HTGR 등과 같은 에너지원의 개발을 담당하고 있으며 에기연은 수소의 생산, 과기연은 개발(생산)된 수소의 이용 및 활용방안에 대한 연구를 맡음으로서 수소생산에서 활용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커다란 수소사이클을 완성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큰 프로젝트라 할지라도 1개 연구기관에서 전담했던 것이 상례였던데 반해 이번 공동협력방식은 국가연구기관이 연합한 최초의 연구프로그램이다.
이같은 연구방식은 21세기 기술융합시대를 맞아 향후 국가연구기관들이 나아가야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 국가연구기관들에 대한 과기부(정부)의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수소에너지 집중육성 전략의 일환으로 과기부와 한국원자력연구소가 원자력수소의 필수요소인 고온가스냉각원자로(HTGR)의 개발을 위해 15년 계획의 연구에 나서게 된다.
이미 과기부는 1차년도인 2004년에만 ‘원자력 이용 수소생산시스템 개발사업’에 30억원의 예산을 신규 배정한 상태이다.
이와함께 국책프로젝트인 프론티어사업으로 ‘고효율 수소에너지 제조.저장.이용기술’을 선정, 향후 10년간 매년 1백억원씩 총 1천억원의 연구개발비가 지원된다.
□ ‘원자력수소’의 개발을 위해 미국, 중국, 일본 등과 공동연구에 합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대해 설명해 달라.
‘원자력수소’는 첨단 미래기술이다. 이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독불장군식 독자노선을 걷기 보다는 선도국가간의 국제연합 및 공조, 공동연구프로그램의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위해 과기부는 현재 원자력수소 및 HTGR분야에서 세계적 기술력을 보유한 미국, 일본, 중국 등 3개국과 원자력수소개발을 위한 국가간 공조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지난해 10월 일본의 ORI 원자력연구소를 시작으로 올해 6월 미국 국립아이다호연구소, 9월 중국 칭화대 부설 원자력공학연구소를 본인이 직접 방문하여 공조협력의 필요성을 피력하고 공동연구에 합의했다.
결국 과기부가 추진중인 원자력 수소 개발계획의 큰 틀은 국가연구기관의 공동연구개발, 정부지원, 기술선도국가간의 공조 등 3개 부분이 유기적으로 복합되어 진행중이다.
□ 4개국의 공동연구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
4개국 공동협력은 하나의 연구소를 통해 단일화된 원자력수소 기술을 개발해내는 것이 아니라 각 나라별로 별도의 연구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이는 각 국가별로 경쟁우위를 지니고 있는 원자력기술이 다르기 때문이며 각자 강점을 지닌 분야의 연구소를 자국내에 설치, 관련기술을 집중 연구한 후 여기서 도출된 결과들을 4개국이 함께 공유하는 일종의 네트워킹 시스템을 운용할 계획이다.
다시 말해 4개국의 공조는 ‘개별연구’를 통한 ‘결실의 공유’라고 설명할 수 있다.
물론 각 국의 투자비용은 동일한 수준이 될 것이며 이를 통해 기술개발의 효율성 증진은 물론 대규모 투자로 인한 위험부담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 4개국의 현재 기술수준을 비교해 본다면.
표면적으로 보면 원자력수소와 관련해 우리나라가 가장 후발주자로 꼽힌다.
일본은 이미 70㎿급 HTGR 개발을 완료하고 관련실험을 개시한 상황이며 중국도 10㎿급 HTGR을 완성해 올해 1월 시험운전에 들어갔다. 미국의 경우 이미 과거에 5기의 HTGR을 개발해본 경험이 있다.
한국의 경우 HTGR 분야에서는 다소 뒤쳐져 있지만 1400㎿급 원자로를 자체적으로 설계.운용할 수 있는 세계 최고수준의 원자력 기술보유국이다.
일반적인 원자로가 평균 1000㎿급인데 반해 원자력수소용 원자로는 100㎿ 정도면 활용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이번 4개국의 기술협력 합의과정에서도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다.
자동차에 비유해보면 우리나라는 배기량 800cc의 경차를 생산하지 않고 있을 뿐 3000cc이상의 벤츠승용차를 만들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이해하면 된다.
실제로 4개국이 각자 연구한 실적을 상호공유하기로 합의한 것은 그만큼 각 나라의 기술력을 서로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HTGR 개발경험이 없는 한국이 여타 3개국과 동등한 자격으로 연구에 참여한다는 사실에서 우리나라의 원자력 기술이 얼마나 탁월한 지를 알 수 있다.
□ 4개국 사이에 기술주도권 확보를 위한 이해관계의 차이는 없는지.
논의초기에 일본은 자국이 현시점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있다는 점을 들어 자신들이 이미 이룩해놓은 연구성과들을 토대로 기술개발에 나서자는 입장을 피력했지만 원자력수소 기술의 주도권이 특정국가에 귀속되는 것을 원치 않은 3개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즉 일본이 이번 공동연구프로젝트에 합류한데에는 선발주자로서 후발주자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의 경우 워낙 에너지자원이 풍부한 국가이기 때문에 HTGR의 개발에는 동참하지만 수소의 생산에는 아직 별다른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중국이 HTGR을 개발하려는 주목적은 만주지역에 매장된 중질유를 채굴하는데 필수요소인 고온증기를 얻기 위해서이다. 단지 중국은 이번 기회를 통해 위험부담을 최소화하며 원자력수소 관련기술을 확보해 놓는 것이 미래에 대비해 결코 나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선발주자인 일본을 따라 잡아야 한다는 공통분모를 지닌 한국을 공동연구 파트너로서 가장 선호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감안할 때 향후 4～5년내 일본 추월이 가능할 전망이며 오는 2020년경에 이르면 한국, 미국, 일본 등 3개국이 원자력수소 분야에 있어 최고 선진국의 지위에 올라 있을 것이다.
□ 원자력수소에 대한 국제 동향은.
현재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등 4개국을 제외하고 원자력수소 및 HTGR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국가는 가스원자로 분야의 최고 선진국인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지역의 몇몇 국가에 국한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 국가 대부분은 실제 개발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이와관련 한국이 지난 9월 개최된 IAEA(국제원자력기구) 총회에서 박호군 과기부 장관의 기조연설을 통해 원자력수소생산을 비롯한 국내 첨단 원자력 기술개발 현황을 소개하는 한편 ‘원자력수소’를 IAEA의 미래 중점과제로 채택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한바 있다.
당시 참석자들도 많은 관심과 동의를 표시했기 때문에 아마도 1～2년내에 원자력수소가 IAEA의 중점과제 프로그램으로 실시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 수소경제실현 과정에서 예상되는 문제점이 있다면.
원자력수소를 필두로한 우리나라의 수소경제가 원활히 구현되기 위해서는 수소의 대량생산기술과 실질적인 수소활용기술이 동일한 시점에서 자연스럽게 만나야만 한다.
현재 과기부는 이르면 2015년, 늦어도 2020년까지 원자력수소를 통한 수소의 대량생산기술 개발을 완료할 계획이지만 그때까지 국내의 수소이용기술이 상용화될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는 실정이다.
만일 생산기술에 비해 이용기술의 개발이 늦어진다면 외국의 수소활용제품들이 국내 시장을 완전 잠식할 수 있으며 반대로 수소생산능력을 갖추지 못한채 이용기술이 먼저 정착되면 일본 등지에서 수소를 수입해야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수소의 위험성과 관련해서도 일부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현존하는 가장 위험한 에너지원인 원자력을 가장 안전하게 사용중인 국가중 하나이다.
원자력과 마찬가지로 수소의 안전 또한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 HTGR에서 수소이외에 생산되는 산업용가스는 어떤 것이 있으며 이에 대한 활용방안은.
물전기분해, 수증기개질, 요오드-황(IS) 등 공정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HTGR을 통한 수소생산시 일반적으로 산소(O2)가 함께 생산된다. (원자력硏은 수증기개질법 활용시 600㎿급 HTGR 1기에서 연간 H2 8만2천톤, CO 20만톤, CO2 39만2천톤의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
아직까지 수소를 제외한 여타 산업용가스에 대해서는 활용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해보지 않았지만 앞으로 원자력 부생가스의 시장성 및 활용성을 적극 검토해 보겠다.
특히 원자력수소가 아니더라도 기존 원자력에너지 생산과정에서 제논(Xe)과 같은 희귀가스가 발생된다.
원자력에 있어 제논은 에너지발생의 저해요소로서 지금까지 별도의 포집과정을 거쳐 대기(大氣)에 방출하고 있지만 산소 등과 함께 희귀가스의 활용방안도 실질적인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 조청원 원자력국장 프로필
서울대 화학공학과 출신의 조청원 원자력국장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의 전신인 한국과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지난 79년 과학기술처(現과기부) 원자력국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원자력협력과장, 원자력통제과장 및 연구관리과장, 원자력정책관, 원자력안전심의관 등 원자력분야의 주요요직을 두루 거쳐 지난 2000년부터 지금까지 원자력국장의 중책을 맡고 있다.
원자력국장으로서 서정욱 장관, 김영환 장관, 채영복 장관 그리고 현 박호군 장관에 이르기까지 총 4명의 장관을 보좌하고 있으며 원자력국장직이 민간전문가를 영입할 수 있는 개방형임용직으로 바뀐 이후에도 변함없이 국가 원자력 정책의 최고실무를 맡고 있을 만큼 대내외적으로 탁월한 전문성과 정책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약력>
△1953년생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 △한국과학원 화학공학과 석사 △미국 신시내티대학 화학 및 원자력공학과 박사 △과학기술처 원자력국 사무관 △과학기술처 장관 비서관 △과학기술처 원자력협력과장 △국립중앙박물관 서울과학관장 △과학기술처 원자력통제과장, 연구관리과장 △과학기술처 원자력정책관 △駐오스트리아 대사관 과학참사관 △과학기술부 원자력안전심의관 △과학기술부 원자력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