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가 연일 9시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3일 국회에서는 한국가스안전공사에 대한 산업자원위원회(위원장 맹형규)의 국감이 진행됐다.
LPG나 LNG, 도시가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그동안의 안전공사 국감과 달리 이날 국감장에서는 뜻밖에도(?) 고압가스(산업용가스)가 핫이슈로 떠오르며 장내를 뜨겁게 달궜다.
물론 과거에도 일부 산자위 소속의원들이 국감을 위해 산업용가스 관련자료를 요청하거나 질의를 한 사례는 있었지만 이번처럼 산업용가스 분야가 국감의 핵심의제로 발탁되어 집중적인 질의와 공식답변이 이루어진 것은 지난 74년 고압가스보안협회(한국가스안전공사의 전신)가 출범한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이슈 1] 무허가 업소의 고압가스 판매 만연
산업용가스업계 관계자들에게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에 불과한 공구유통업체, 이벤트 업체, 의료기기 공급업체 등 무허가업체들의 불법 고압가스 판매관행이 이번 국감에서 도마 위에 올랐다.
한나라당 박순자 의원은 “현행법상 1리터 이상의 고압가스는 판매업 허가를 받은 업체만이 판매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공구유통상가들이 고압가스를 불법적으로 판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또 “이벤트 관련 업체들이나 의료장비 공급업체들도 무허가로 헬륨과 같은 고압가스를 공공연히 판매한다.”고 덧붙였다.
박 의원은 이같은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직접 시내 공구상가에서 구입한 5리터 산소용기 및 7리터 LPG용기로 구성된 산소용접장비와 구입영수증, 현장사진 등을 제시했다.
박 의원은 “한번이라도 직접 현장에 나가보면 이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음에도 안전공사 실무자는 책상에 앉아 ‘고압가스 유통구조상 무허가 판매는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며 한국가스안전공사의 탁상공론식 업무행태를 질타했다.
이처럼 박 의원이 증거까지 내보이자 답변자로 나선 안전공사의 박달영 사장은 “무허가 업체들의 불법고압용기 유통실태에 대해 조사를 벌이겠다.”고 말하고 국감 직후 불법 고압가스 판매업주들에게 판매주의를 알리는 안내장을 배포토록 지시했다.
이와 관련 산업용가스 업계전문가들은 “용접공구, 이벤트, 의료기기 업체들의 고압가스 판매관행은 명백한 불법이지만 그나마 이들 업체 대부분은 공식유통경로를 통해 가스와 용기를 공급받고 있으므로 의지만 있다면 실태파악이나 통제가 가능한 상황”이라며 “문제는 그동안 안전공사가 무허가 업체들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허가업소 위주의 단속과 관리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충전소 A사의 한 관계자는 “지금도 서울 청계천일대 등
일부 재래상가 밀집지역에서는 유통경로를 전혀 알 수 없는 무적(無籍) 미검용기를 고철상 등을 통해 구입, 외부도색만 다시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무허가 고압용기 판매업체들을 볼 수 있다”며 “안전의 측면에서 보면 이들에 대한 단속이 더욱 시급한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이슈 2] 독성가스 안전관리 부실
최근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파병과 맞물려 한국에 대한 테러 위협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 이규택 의원이 국내 독성가스 안전관리의 부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먼저 이규택 의원은 국감에 앞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현행법상 국내 독성가스의 유통량과 유통경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현행 고법에 따라 국내 독성가스 제조업체는 1년에 한번 안전공사의 정기검사만 받도록 되어 있어 생산량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며 “수입업체의 경우에도 지난 99년 규제완화에 따라 수입신고제도가 폐지되면서 업체수나 수입량을 제대로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또 독성가스 관련업체들이 독성가스 운반시 밀폐용 차량이 아닌 일반트럭으로 운반하고 있다는 점을 들며 독성가스 수입신고제도를 부활시켜 유통량과 유통경로를 파악하는 등 안전관리를 강화해야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산업용가스 업계종사자들은 “국내 산업용가스 산업의 규모와 중요성은 매년 확대되고 있지만 수입에 100% 의존하는 경우가 아니면 독성가스를 포함해 국내에 유통중인 그 어떤 산업용가스도 생산량, 소비량, 유통량, 시장규모 등에 대한 공식집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산자부, 안전공사, 연합회 등 누가 주축이 되던 산업용가스 산업 전반에 대한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편 안전공사의 추산에 따르면 국내의 독성가스 생산량은 2001년 3백44만톤, 2002년 4백14만톤, 2003년 4백38만톤, 수입량은 2001년 1백28만톤, 2002년 1백54만톤, 2003년 1백85만톤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슈 3] 정기안전교육의 부활
열린우리당의 선병렬 의원과 오영식 의원은 지난 2002년 9월 개정된 고법시행규칙에 따라 폐지된바 있는 ‘정기안전교육’을 부활시켜 부실한 안전교육을 강화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선 의원은 “법개정 이전에는 가스안전관리자들이 매 2년마다 1회씩 지역별로 안전교육을 받아왔지만 지금은 안전관리자에 선임된 이후 가스안전교육원에서 실시하는 2박3일간의 교육을 평생동안 단 한번만 받으면 돼 안전관리에 부실이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개정 법률에는 제도변경, 기술발달 등 안전관리 환경의 변화로 추가적인 안전교육이 필요할 경우 산자부 장관이 교육을 소집할 수 있는 ‘전문교육’ 규정이 있지만 선 의원은 이에 대해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일축하고 정기적인 전문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오 의원 또한 “가스배달원들의 경우 처음 배달원이 된 후 단 3시간의 교육을 이수하면 평생 업무가 가능하다”며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배달원 안전교육을 격년 또는 3년주기의 정기교육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이같은 의원들의 지적과 관련 산업용가스 충전소 B사의 안전관리자는 “과거의 정기교육은 ‘전시교육’이라 불렸을 만큼 내용면에서 실질적인 안전관리 능력향상에는 거의 도움을 주지 못했다”며 “정기교육의 부활이나 교육의 횟수를 따지기 이전에 교육의 질을 어떻게 향상시켜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국감 이모저모 (BOX)
○ ‘댐물’에 놀란 가슴 ‘고압용기’ 보고 덜컥
- 한국가스안전공사 국감에서 한나라당 박순자 의원이 증거물로 내놓은 고압용기를 보고 같은 당 김용갑 의원은 “이번엔 가스통이 폭발하는 줄 알았다”고 너스레.
김 의원은 지난 8일 한국수력원자력에 대한 국감 당시 박 의원이 강원도 도암댐의 심각한 수질악화를 알리기 위해 따라놓은 댐 물을 녹차로 오인해 원샷(?)을 했던 아픈 경험이 있다.
○ 고압용기가 부른 상생정치
- 안전공사 국감 다음날 열린 중소기업청 국감에서 산자위는 지금까지의 전례를 깨고 여.야 구분없이 함께 섞어 앉는 등 화합적인 모습을 연출.
이는 8일 ‘도암댐 사건’과 13일 ‘고압용기 사건’ 등 한나라당 박순자 의원에 의해 연이어 피해(?)를 입은 김용갑 의원을 위해 열린우리당 김태홍 의원이 “나와 자리를 바꿔 앉자”고 제안하자 다른 의원들이 “중기청 국감부터는 아예 여.야 구분없이 앉자”고 호응해 성사됐다.
결국 고압용기가 산자위 의원들의 상생정치를 이끈 셈.
○ 발로뛴 박순자 의원 국감우수의원 선정
- 지난 14일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법률소비자연맹, 한국여성유권자연맹 등 2백7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국정감사 NGO모니터단이 각 상임위별로 국감 우수의원을 선정.발표했는데. 산자위에서 도암댐 사건과 고압용기 사건을 일으킨 한나라당 박순자 의원이 선정돼 눈길.
선정결과를 본 한 산업용가스 업계관계자는 현장을 발로 뛰며 국감을 준비한 열정에 대한 당연한 결과라고 자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