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자가플랜트(잉여가스)와 액메이커 사이에서 중간자적 입장을 견지해왔던 국내 산업용가스 충전업계가 마침내 잉여가스 유통질서 확립이라는 대변혁을 꾀하고 있다.
최근 한국고압가스공업협동조합연합회를 비롯 서울경인조합, 대구경북조합 등은 국내최대의 잉여가스 유통업체인 포스코(포항제철, 광양제철)의 철강부산물 판매를 담당하는 포스틸에 잉여가스 저가판매 중단과 공개경쟁입찰 실시를 공식 요구했다.
이들은 포스틸에 보낸 청원서와 건의서를 통해 “포항제철 및 광양제철에서 출하된 저가의 잉여가스로 전국 산업용가스 유통질서가 파괴되고 대다수 충전.판매사업자들이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며 잉여가스의 저가판매를 중단하고 공개경쟁입찰을 실시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는 현실적으로 잉여가스 유통을 막을 수 없다면 매입단가 상향조정을 통해 가격을 현실화하거나 공인단체의 공동구매 등을 추진, 한단계 향상된 수준에서 시장경쟁을 유도하고 안정화를 꾀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판단된다.
충전업계가 잉여가스 수급업체가 아닌 자가플랜트 보유업체를 대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연합회 및 조합차원에서 문제해결을 위해 전면에 주도적으로 나선 것도 산업용가스 역사상 없었던 초유의 일이다.
○ 사태 추이 및 전망
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번 청원은 지난해 12월 대구지역 15개 판매업소가 “포스틸의 잉여가스를 제공받는 신규충전소 H社(한신가스산업)로 인해 가격하락과 거래처 침탈이 잇따르고 있다”며 “H社 수준인 40～50%의 공급가 인하”를 요구하면서 불거졌다. 이에 대구지역 충전업계는 대구경북조합 15개 조합사의 공동명의로 포스틸에 공문을 발송, 시장안정화를 위해 포항과 광양의 잉여가스를 현재가 대비 100%가량 인상된 수준으로 전량 매입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나 포스틸측의 미온적 반응으로 사태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전국연합회가 전국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잉여가스 관련 피해접수에 돌입,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고 때마침 수도권내 H社(한국탄산화학)의 충전업 진출로 고심중이던 서울경인조합과 대전충남북조합까지 적극 가세함으로서 전국적인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전국연합회가 포스틸에 제시한 개선안은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도록 가격인상후 연합회.조합 등 회원사 공동명의로 잉여가스 전량매입, 공개경쟁입찰을 통한 특혜의혹 논란 불식, 적정 단가책정에 의한 시장유통가격 안정화 등이다.
연합회 및 조합 대표자들은 구랍 20일 이같은 내용으로 서울 강남의 포스틸 사옥에서 잉여가스 판매관계자들과 접촉, 장시간에 걸쳐 의견을 조율했지만 아직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날 포스틸측은 자체 대책회의를 가진 상황에서 기존 잉여가스 수급업체들과도 논의가 필요하다는 수준의 원론적 내용이외에는 별다른 입장표명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따라 포스틸이 정확한 입장을 밝히기 이전까지는 이번 사태가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될지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실정이다.
단지 어떤 식으로 해결되던지 간에 전면전에 나선 연합회와 기존 잉여물 수급업체들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사활을 건 논리공방이 연초 산업용가스 충전업계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할 것만은 자명하다.
이와 관련 전국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가스전문업체를 통한 위탁관리나 아웃소싱이 일반화되어 있고 자가플랜트 보유업체가 잉여가스를 직접 판매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며 “향후 포스틸과의 협의결과에 따라 선진국형 기업문화의 정립을 위해 호남석유화학, 한보철강 등 잉여가스 판매업체에 동일한 방안의 접촉을 시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국내 잉여가스 유통구조
현재 국내에서 산소, 질소, 아르곤 등 3대 산업용가스를 잉여가스라는 이름으로 판매중인 자가플랜트 보유업체는 철강.제강, 화학, 반도체 등을 포함해 메이저 업체만 10개사를 넘어서고 있다.(관련기사 제41호 8면)
일반적으로 잉여가스는 생산된 물량중 자체 소비된 후 과잉생산되어 남는 여분을 의미하는데 전체 잉여가스의 생산원가가 이미 최종 제품의 제조단가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원가개념 자체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또한 전기료, 물류비, 인건비 등에 의해 매년 10～20%의 가격인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액메이커와 달리 잉여가스는 외적요인에 의한 가격인상 요인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과 달리 자가플랜트 운영비율이 높고 잉여가스 유통량이 많기 때문에 잉여가스에 따른 파급효과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결국 이러한 잉여가스를 매입하는 업체들은 전문 액메이커들로부터 물량을 공급받는 일반 충전업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가격 경쟁력을 지니게 되고 어떠한 업체가 어느 정도의 잉여물량을 확보했는가에 따라 인근지역 시장구조가 단시간내에 붕괴될 수도 있다.
사업초기 성공적 시장정착이 최우선 과제인 신규충전소들은 잉여물 수급여부에 따라 사업개시를 여부를 결정하기도 한다.
매년 잉여가스 수급업체들과 여타 충전소들 사이에 특혜논란, 출혈경쟁 등과 같은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나 액메이커를 비롯한 중대형 충전소들이 잉여시장에 촉각을 세우며 신규물량 인수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동안 산업용가스 제조업체인 액메이커들은 유통시장의 혼란방지와 시장안정화라는 대의명분을 살려 잉여가스의 직접 유통을 시도하고 일부 실현하기도 했지만 잉여가스 출하업체와 유통업체들의 협조부재, 과다한 물량 수급의 어려움 등으로 만족할 만한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어 이번 충전업계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포스틸의 잉여가스 최대 출하가능량은 산소, 질소, 아르곤을 포함해 월평균 약 7천5백톤 규모이며 국내 충전업계 전체 유통량의 약 5%가 실제 출하되어 활용되고 있다. 이번에 직접적 시발점이 된 광양제철의 경우 광양종합가스(신일가스, 동해가스산업, MS가스), 삼진기업(한국특수가스), 한국탄산화학 등이 잉여가스 수급계약을 체결한 상태로 이들 업체를 통해 약 20여개사가 성업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