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빅3 체제 유지

구조조정 의지 상실 우려

정부가 공공선박 발주와 해운선사 금융지원을 골자로 하는 조선·해운업 경쟁력 방안을 발표하면서 주요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 방안 마련 작업이 일단락됐다.

하지만 정부가 4개월간의 논의 끝에 발표한 ‘조선업 경쟁력 강화 방안’은 지난 6월 8일 내놓은 ‘조선산업 구조조정 추진 체계 개편 방안’을 미세 조정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두 달 가량이나 미뤄오다 발표된 이번 방안에는 ‘빅2 체제’로 개편 등 핵심 구조조정 내용이 제외되고 기존 빅3 등을 포함한 조선업종 지원책이 중심이 됐다.

이로 인해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따른 국가 전체의 위기 상황 속에서 조기 레임덕 우려로 인한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가 상실됐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10월 31일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제6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과 ‘조선밀집지역 경제활성화 방안’을 발표를 통해 수주 절벽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건조설비와 인력을 크게 줄인다고 밝혔다.

이날 정부가 밝힌 내용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공개돼 온 자구계획으로 당초 맥킨지 보고서 초안에 담긴 것으로 알려진 빅2 체제로 개편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공공발주 및 금융정책 지원 등

수주 절벽 대응에 총력

이날 조선산업 구조개편 방안에 대해 대체로 기존 조선 3사의 자구계획을 요약 정리한 것으로 새로운 내용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이날 발표에서 조선사들이 일정 기간 동안 수주 절벽 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공공발주나 금융정책 지원 등을 통해 전방위적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우선 현재 수주절벽 대응을 위한 수요창출을 위해 오는 2020년까지 11조원 규모의 250척 이상의 선박 발주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2018년까지 7조5,000억원을 투입해 군함, 경비정, 관공선 등 공공선박 63척 이상을 조기 발주하고 2020년까지 선주를 대상으로 선박신조지원프로그램(2조6,000억원), 에코십 펀트(1조원), 여객선 현대화 펀드(1,000억원) 등 3조7,000억원의 자금을 지원해 75척 신조 발주를 유도키로 했다. 또한 연안화물선과 여객선 등 중소형 선박 건조에 대해 대출 상환기간 연장(10→15년), 담보 인정비율 상향(60→70%) 등 금융 우대를 통해 115척의 신조 발주를 유도할 계획이다.

이와 별개로 정상외교 등 고위급 외교채널을 적극 활용해 123억달러 규모의 해외 군함 프로젝트 등 해외 수주도 지원할 예정이다.

조선3사 도크 23% 축소…인력 32% 감축 추진

이와 함께 조선산업 구조개편에서는 건조능력 축소 및 유동성 위기 해소를 위한 고강도 자구계획이 이행된다. 이로 인해 전체 시설규모와 인력은 대폭 축소될 예정이다.

먼저 수요전망 등을 고려해 각 사별로 부유식 도크 등 유휴설비 매각 및 가동중단, 인력조정 및 외주화를 추진해 2018년까지 조선 3사의 도크 수를 총 31개에서 24개로 23% 축소하고 직영인력도 6만2,000명에서 4만2,000명으로 줄인다. 특히 부실규모가 크고 발주전망이 불확실한 해양플랜트 사업 규모를 축소하고 수익성 평가를 대폭 강화해 과잉·저가 수주를 방지하기로 했다. 또한 유동성 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조선사별로 비핵심사업과 비생산자산의 매각 또는 분사, 자회사 매각, 유상증자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우선 현대중공업은 유휴 도크 가동 중단, 비조선해양 사업부문(태양광, 풍력 등) 분사 및 Pre-IPO(기업공개 전에 미리 투자자들로부터 자금 유치) 등을 추진하고 삼성중공업은 부유식 도크 1개, 3,000톤 해상크레인 1개 등 유휴설비의 가동 중단과 함께 호텔, 선주 숙소 등 비생산자산을 매각하고 1조1,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할 계획이다. 대우조선해양은 해양플랜트 사업을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14개 자회사와 조선소 사업장 외 모든 부동산을 매각할 계획이다.

이처럼 기업은 각사별 자구계획과 컨틴전시 플랜을 조기에 완료하고 정부와 채권단은 이행상황을 정기적으로 점검해 이행 실효성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이같은 자구계획과 함께 조선사별로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해 핵심역량에 집중하고 유망 신산업을 발굴하기로 했다.

현대중공업은 선박 연관 융합 서비스업 진출을 모색한다. 조선과 부품유통·서비스를 융합한 애프터마켓 사업, 조선과 정보통신기술(ICT)·물류산업을 융합한 스마트십 시스템 등의 분야를 육성할 방침이다. 또한 해외 조선소 운영 현대화 사업에도 진출하고 해양플랜트 핵심기자재 사업과 LNG 벙커링(LNG 연료추진선 등 선박에 LNG를 공급하는 서비스) 등 신시장도 개척한다. 삼성중공업은 상선 부문을 친환경·고부가 선박 중심으로 전문화한(LNG 밸류체인 제품 구축)다. 운영정비(O&M), 심해저개발 사업 같은 해양플랜트 서비스 등 여러 사업에 신규 진출할 계획이다. 대우조선은 대형 LNG선, 고효율 메가 컨테이너 등 차세대 신선박 사업에 나선다. 뿐만 아니라 연료전지나 에너지 저감장치 등 차세대 선박추진체계를 개발하고 첨단 기술과 건조 기술을 활용해 수출 방산사업의 역량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정부는 특히 빅3 유지 또는 빅2 체제 개편 등 대우조선의 향방에 대해서는 조선사별 체질개선, 경영정상화 정도, 시장 여건 등을 종합 고려해 산은의 대우조선 민영화, M&A 등 산업재편을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채권단 관리하에 있는 대우조선은 상선 등 경쟁력 있는 부문을 중심으로 효율화할 계획”이라며 “중장기적으로 주인찾기를 통해 전문성 있고 능력 있는 대주주 등의 책임경영을 유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업의 사업재편이 신속하고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기활법을 통한 절차 간소화 등 제도적 뒷받침도 지속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친환경·스마트 선박 등에 집중 투자

해양플랜트 경쟁력 강화도 중점 추진

한편 정부는 이번 방안에서 경쟁력 우위 부문은 친환경·스마트 선박 등에 집중 투자해 우위를 유지하고 열위 부문은 설계 수주역량 확충 및 틈새시장 개척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이다. 이를 위해 5년간 민관 공동으로 연구개발(R&D)에 7,500억원을 투자하고 전문인력 6,600명을 양성해 선박산업 고부가가치화에 집중하기로 했다.

정부는 우선 대형선종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현재 65% 내외에서 2020년까지 75% 이상으로 확대하고 2020년까지 2,400억원을 투자해 스마트선박 핵심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아울러 IMO 환경규제 강화에 대응하기 위해 경량화가 가능한 無평형수 선박 개발을 2019년까지 완료(65억원 지원)하고 배출가스 저감(SOx, NOx)을 위한 ‘LNG연료추진선’ 보급 확대를 위한 핵심기술(연료공급장치·연료탱크 등) 개발에도 집중 투자한다.

구체적으로 LNG 연료공급장치, 연료탱크 등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시험인증 및 실증을 통해 2020년까지 수출사업화를 꾀할 예정이다. 더불어 LNG연료추진선에 대한 취득세도 감면해줄 방침이다.

적자부문인 해양플랜트 경쟁력 강화도 중점 추진된다.

먼저 취약한 설계능력 확충을 위해 2017년 상반기 중 조선사 및 육상플랜트 분야 엔지니어링사가 공동출자해 플랜트 설계 전문회사(JV) 설립을 추진하기로 했으며 해양플랜트 기자재 국산화율을 현재 25%에서 2020년까지 40%로 끌어올리기 위해 R&D, 인증, 표준화 등에 집중 투자하기로 했다.

해양플랜트의 수주 개선을 위해서는 2020년까지 핵심 프로젝트 매니저(PM) 100명을 양성하고 RG 발급 심사대상 확대 및 사업성 평가를 강화해 저가 수주방식도 개선키로 했다.

이밖에도 경쟁력 열위 부문인 벌커 및 중소형 탱커 등의 비중은 축소하고 특수선 등 차별화된 틈새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1,000억달러 규모 선박 서비스 시장 진출

고부가 선박산업으로 육성

그동안 선박 건조 위주의 기존 사업 포트폴리오도 전면적으로 개편된다.

정부는 개조·수리·설계·유지보수 등 선박서비스를 포함하는 고부가가치가 서비스 영역에도 발을 넓혀 새 먹거리를 창출하는 방안도 구상했다.

산업부 정만기 1차관은 “이제까지는 조선산업(Ship Building Industry) 이라고 했는데 앞으로는 선박산업(Ship Industry)이라는 네이밍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사업재편 지원자금 등 2조7,000억원을 활용해 3만톤 이상 대형선박 수리가 가능한 조선소를 현재 1개에서 2020년까지 3개 이상으로 확대키로 했다. 또한 현재 해외에서 수리 중인 한국가스공사 선박 중 올해 수리 물량의 20%를 국내 조선소에 몰아주고 다른 공기업 선박수리도 단계적으로 국내 전환을 추진키로 했다. 이렇게 되면 지난해 1.3%에 그쳤던 대형선박 수리 자급률을 2020년까지 10%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해양플랜트 유지·보수 시장신규 진출을 위해 가상 유지·보수 시뮬레이션, 원격관리시스템, 해체·철거 기술 등 3대 유지·보수 핵심기술을 개발하고 2019년 생산이 종료되는 한국석유공사 동해 가스전 해체사업을 통해 Track Record 확보를 지원하기로 했다. 아울러 국내 기자재 기업의 해외 발주처 벤더등록을 지원함으로써 국내 업체의 해외 유지·보수사업 진출도 지원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해외 조선소 건설·운영 컨설팅 진출을 위해 국내 조선소 건설·운영 노하우를 활용, 합작법인 설립 등 다양한 협력모델을 개발해 산유국, 인도 등 해외 조선소 건설운영 자문시장을 개척하고 정상외교 등 정부간 고위급 채널을 활용해 해외 조선사에 대한 기술자문·교육과 연계한 수주도 지원된다.

이밖에도 환경규제에 따라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LNG 벙커링 시장 개척을 위해 항만운송사업법 개정으로 사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벙커링이 가능한 LNG 인수기지를 2020년까지 3개 이상 확보하기로 했다. 특히 내년에는 한국LNG벙커링산업협회를 중심으로 민관공동 SPC를 별도로 설립해 LNG 벙커링 선박을 신규로 발주한다는 방침이다.

알맹이 없는 재탕 정책 업계 반응 ‘싸늘’

정부가 발표한 이번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해 업계에서는 조선3사가 추진해오던 자구안을 요약 정리한 수준으로 새로운 내용이 없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의 운명이 사실상 현행유지 된 것에 대해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강한 불만도 제기됐다.

정부는 업계 최대 관심사였던 대우조선해양에 대해 “채권단 관리하에 있는 대우조선은 상선 등 경쟁력 있는 부문을 중심으로 효율화하고 중장기적으로 주인 찾기를 통해 전문성 있고 능력 있는 대주주 등의 책임경영을 유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는 조선 빅3중 대우조선의 독자생존이 어렵다는 내용을 담았던 맥킨지 컨설팅 보고서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끝내 회생을 결정한 것과 관련해서는 정치논리에 휘말린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즉 업계는 정부가 국내 조선업의 공급능력 감축이 시급하다고 밝히면서도 사회적 논란을 낳고 있는 대우조선을 끌고 가겠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이고 합리적인 대책을 내놓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 대우조선 측은 일단 안도하며 공중분해라는 최악의 상황을 면한 만큼 이미 진행 중인 자구계획안을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정부의 빅3 유지 방침이 나온 만큼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 등의 자본확충 방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반면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등은 이번 대책은 조선업 위기의 근본 원인인 공급 과잉을 해결할 방안이 전혀 없는 원론적인 정책이라는 의견이다. 전문가들 역시 새롭거나 특별한 내용이 없는 맹탕정책이라는 지적이다.

오는 2018년까지 조선 3사의 도크 수를 축소하겠다는 것이나 부실의 최대 원인인 해양플랜트 사업 축소, 그리고 조선사별로 비핵심 사업과 비생산 자산 매각 등을 추진한다는 내용은 이미 각 사별 자구안에 포함된 것을 정리한 것에 그쳐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다는 얘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맥킨지 컨설팅은 왜 한 건지 모르겠다”며 “메스를 댈 곳에 약처방만 하고 넘어가면 제대로 된 치료를 못 해서 장기적으로 더 마이너스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1년 반 전에 서별관회의에서 4조2,000억원을 대우조선에 집어넣자고 한 것도 회의적인 결론이 났는데 이번 처방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며 “대우조선 때

문에 3사가 다 어려워지는 결과가 생길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정부의 조선업 구조조정 의지가 없는 발표로 레임덕이 본격화되고 공직사회 복지부동 악습까지 더해지면 이번 정부 내에서 조선업종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는 것은 물 건너갔다는 게 산업계 전반적인 평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