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는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에 걸쳐서 무엇인가가 쉴 새 없이 스쳐 지나가고 있다.
그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물과 공기, 빛 등은 물론이요 이름 모를 풀·벌레 등을 포함한 각종 유형·무형의 존재들이다. 이중에서도 우리들의 눈과 몸을 통해 스치는 수많은 사람들은 나로 하여금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느끼게끔 하는 중요 요소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불교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현생에서 아주 잠깐 동안 스쳐 지나가버리는 관계라 할지라도 전생에서는 오백 번의 생을 걸친 우연 또는 필연의 관계가 있어야 가능할 수 있는 인연이라고 한다.
현생의 부부 인연도 전생에서 몇 겁에 걸쳐 이어온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물며 부부의 연은 맺지 못했더라도 필자와 마주앉아 웃고 떠들며 세상살이를 이야기하는 수많은 지인들은 전생에 얼마만큼 많은 인연을 맺어 왔기에 옷깃이 아니라 손을 맞잡을 수 있는 관계가 됐을까? 하는 궁금증이 문득 떠오른다.
인연은 우연, 필연, 악연, 선연 등이 뒤얽힌 관계를 의미한다. 우연이 악연 또는 선연으로 될 수 있고 악연이 필연으로 이어질 수 도 있는 것이기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인연을 소중히 생각해야할 것이다.
특히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감정적 대립과 이기주의 등으로 인해 어떤 인연에 대해서는 악연으로 치부하고 회피하거나 꺼려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끊을 수도 없는 인연이 아닌데다가 마음을 다스리면서까지 구태여 악연을 선연으로 바꾸려고 할 필요도 없는 것이 인연의 모호함이다.
결국 인연 자체를 선연과 악연 등으로 구분 짓는다는 발상은 우리들 마음속에서 생성된 생각과 행동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 다만 인연이라는 관계에 대해 그 이상도, 이하로도 판단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억지로 선연, 악연, 우연, 필연 등으로 구분 짓고 있는 모든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으로 업신여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따라서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마주쳐야 할 수밖에 없는 지속적인 스침의 인연은 그것이 선연, 악연으로 나누기 이전에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는 사실임을 주지하고 소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기지개 펴듯 큰 숨을 단번에 내뱉으며 잠시 동안이나마 우리 주위를 한 번 둘러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이 어떨까?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되는 현실 속에서 현재와 과거에 걸쳐 맺었던 인연을 돌이켜보며 그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고 어떻게 하든 잘 가꾸어 나가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시간이 됐기를 바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 모든 인연들 속에서 누군가와는 아주 잠깐 스쳐 지나는 인연에 불과한 존재로 남기보다는 항상 기억하고 언제까지나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나 스스로가 인연의 소중함을 잊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