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에너지 빈곤층’이 전체 가구의 약 8%인 120만가구에 달해 이들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에너지 빈곤층’이란 최소 필요수준의 전력·난방 등 에너지를 이용하지 못하거나 소득 10% 이상을 최소한의 에너지 구입비로 지출하는 가구를 말한다. 이러한 에너지 빈곤층의 지원을 위해 그동안 끊임없이 논의됐던 ‘에너지 바우처’ 제도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저소득층 가정의 연료비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무료 쿠폰을 나눠주는 바우처 제도는 그동안 정부가 가스·전기료를 올릴 때마다 도입을 공언했던 제도로 현재까지 뚜렷한 진전이 없었다.
이에 에너지재단(이사장 김기춘) 주관으로 지난 8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저소득 취약계층을 위한 에너지복지 정책 세미나’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한 ‘에너지 바우처 제도 도입 및 지원방안’에 관한 열띤 토론이 진행됐다.
이날 세미나에는 국회 정태근, 조정식 의원을 비롯해 지식경제위원회 김영환 위원장, 한국에너지재단 김기춘 이사장 등 80여명이 참석했다.
“바우처 제도 도입해 수혜대상 넓히고, 에너지절약 유인해야”
이 자리에서 박광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소득 양극화 심화와 에너지가격 상승으로 저소득층의 에너지소비여건이 악화됐다”며 “이들에 대한 효율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도 요금할인 등의 형태로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주거형태·면적 차이가 반영되지 않아 실제 소비량보다 지원액이 크게 부족하다”며 “또 어떤 에너지원을 쓰느냐에 따라 비용차이가 발생하는 등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에너지 소비는 동절기에 집중되는 계절성이 존재한다”며 “소외된 계층에 구매권을 부여하는 에너지 바우처 제도를 확대·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진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정책과장도 “현 제도는 에너지소비를 많이 할수록 할인혜택을 많이 받는 한계가 있다”며 “바우처 제도는 수혜자를 확대하고 에너지절약을 유인할 수 있으며 유가 변동 분을 즉각 반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현재 관계부처와 (바우처 제도 시행을 위한)재원마련 방안을 협의 중”이라며 “9월 중순까지 협의를 마무리 한 후 연말까지 관련법 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차상위 계층 이후 가구 중 요금을 부담하기 어려워 전기 및 가스공급이 중단된 경험있는 경우가 20%에 달한다. 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며 바우처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제도 도입에는 찬성…대상자 선정·사후 관리가 더 중요
반면 전문가들은 에너지 바우처 제도 도입에는 찬성하면서도 대상자 선정이나 사후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주문했다.
부경대 행정학과 이재원 교수는 “대개 정책대상과 수단이 궁합이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이 있는데 저소득 취약계층과 지원수단인 바우처는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바우처 종류는 굉장히 다양하기 때문에 에너지 바우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기본적으로 바우처 제도에 대해서는 찬성하지만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바우처는 이용자에게 직접 주는 것이다 보니 기존 공급자 중심 방식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정(不正)의 구조에 이용자까지 포함돼 이를 관리하는 부담이 더욱 커진다는 것”이라고 우려하며 “전자 바우처를 이용하면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지만 시스템구축 및 운영비용에 투입되는 비용이 많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현주 연구위원은 “바우처 도입으로 에너지 소비에서 소비자의 선택권을 얼마나 강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바우처를 도입해 얻는 이점보다는 관리 비용 증가나 쿠폰 전매와 같은 부작용이 더 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박세경 연구위원도 “에너지 바우처제도가 에너지 빈곤층의 부담을 경감시키고 에너지복지를 향상시킨다는 것에 대해선 의심할 여지가 없다”며 “다만 수혜자의 에너지 선택권 보장, 카드·쿠폰의 부적절 사용 통제 방안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에너지 바우처 제도란?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 계층에게 기본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쿠폰, 카드, 마이너스 통장 등의 형태로 구매권을 지원하는 제도다. 수혜자가 에너지 구매권을 수령해 본인이 원하는 공급자에 제시함으로써 에너지를 공급받고, 공급자는 구매권을 정부에 제시해 사후에 비용을 수령한다.
